"줄까 말까"

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여든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요즘에 그런 말이 있다.

삼귀다?


사귀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안만나는건 아닌 사이라고 하더라.


예전엔 썸탄다는 단어 하나로

그런 미묘하고 옹종종한

마음과 분위기를 말하곤 했다.


지금은 뭘까.


마음도 있고,

떠나갔던 적도, 떠밀려 온 적도,

부수어지던 때도,

견고해지던 때도,


그런 모든 순간을 겪고난 지금은

무엇도 아닌 어디쯤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줄다리기처럼

서로 꺼내놓지 않는 마음을

줄까 말까한 마음을

뭐라고 부르면 되겠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밍숭맹숭한 감정 어딘가를

무어라 부르면 될까.



-Ram


아, 그 브랜드. 친구는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보다 더 비싸고 좋은 브랜드의 어떤 모델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찾아봤고, 내가 알고 있었던 브랜드였다. 그래서 쉽게 그 모델을 찾았다. 가격도 그 정도면 됐다. 부담이 없는 가격이었다. 이제 결제 버튼만 누르면 된다. 받는 사람의 주소도 이미 배송지 정보에 저장되어 있었다. 핀테크의 무궁무진한 발달로 이젠 비밀번호 4자리조차 필요 없이 아이폰에 얼굴만 들이밀면 결제가 완료된다. 1초면 끝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결제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몇 푼 되지도 않는 금액의 물건이었지만 친구는 취미에 그 돈을 쓰는 것이 부담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그 물건이 없어도 대체할 수 있는 더 저렴한 물건을 이미 친구는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난 그 친구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이왕이면 조금 더 좋은 걸 썼으면 싶었다. 그리고 그나마 조금의 여유가 있는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친구의 삶을 응원해 주고 싶었다. 그렇게 결제 버튼까지 왔지만, 버튼을 누르기 직전 마음 한 편에선 '친구가 내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면 어쩌지, 내가 동정이나 연민하는 것처럼 보이면 어쩌지'라는 조바심이 들었다. 물론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선물을 줄 핑계도 없었다. 그 친구에게 받을 명분을 먼저 주고 싶었는데 그 명분을 주는 것조차 실패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그 누구도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나이가 갑자기 신경 쓰였을까. 작년에 그 친구가 겪었던 너무 마음 아픈 일이 최근 다시 떠올라서였을까. 일차원적으로 봤을 때 조금 덜 불행한 내 삶 때문이었을까. 작은 마음보다 배려의 탈을 쓰고 끼어든 오만 때문이었을까.



-Hee


줄까 말까 고민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떤 의미를 찾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저 주변사람들이 슬픔에 잠겨있으니 내가 잘해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3년 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땐, 나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또 한 명 떠났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이들을 챙기는게 더 급했다.


또 3년 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그 때에서야 정말 혼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남기고 간 유산(할머니는 피아노를 좋아하셨다)들을 더 끌어안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3년 뒤..


대학입학을 앞둔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떠나갔을 땐, 정말 누구라도 언제든지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영영 못보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되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주기적으로 이어졌던 장례식.


그때부터 였을까?


언제든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기에.. 나에게 소중하고 가까운 이들에게 내 마음을 나눠주는 것을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해줄 수 있는 때를 지나고 나서는 그 순간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음을 알게되고부터 였을까?


내가 손해보는 것 같아도 별로 아쉽지 않았다. 내 마음을 주는 것에 조건도 딱히 달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 모두 각자 적당히 살다 돌아갈테니까. 그저 진심을 나누고 매 순간에 충실한 것만이 최선이다.


매 순간을 아끼고 아껴

마음에 있는 진심을..

조심스레 전해보자.



-Cheol


받는 사람이 얼마나 즐거워할지를 상상하며 정성스레 고른 선물들이 다음번에는 부피와 무게를 최대한 덜 차지하면서도 나름 의미가 있는 선물이 되고, 또 그다음에는 면세점에서 잔돈을 털어내려고 산 이름도 모를 과자, 이민자들이 강매하는 에펠 타워 모양의 키 링 같은 싸구려가 되기까지,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나 대신 평소보다 조금은 더 고생할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당연히 사야지.’ 하던 마음이 ‘내 돈쓰고 내 연차 사용해서 다녀오는데 왜 줘야 하지?’ 가 되기까지,


점점 더 악의만 들어찬다. 순수한 호의를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인간에게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게 된다. 줄까, 말까 고민이 되어 일단은 사 온 핸드크림과 립밤을 건네고 나서 고작 그걸 선물이랍시고 사 왔냐는 듯한 태도에, 매번 선물을 맡겨놓은 듯한 태도에 내가 닳아서 없어진다.



-Ho


2021년 5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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