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삼백 아흔 두 번째 주제
01.
첫만남.
오래전 우연히 처음 만날 때에는
그저 그랬다.
오묘하고 생소한
느낌이 싫은듯 좋은듯 알 수 없었다.
아주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접할 때,
궁금한 감정이 들었다.
어떤 부분이,
어떤 모습이,
나를 궁금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생소한 느낌이었다.
02.
언제쯤이었는지
버블티를 처음 먹었을 때
으엑
이런걸 돈 주고 사먹는다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또 어느 순간
다시 먹어보고 싶고,
도전해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게 이상했다.
이제는 습관처럼 찾아먹는
것들이 되어버린게,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고
다들 중독을
그렇게 시작하는 거라고.
-Ram
1.
버블티는 배고플 때 먹기도 애매하고 배부를 때 먹기에도 애매한 존재지만 늘 좋아한다고 얘기한다.
2.
다니던 대학교 앞에 싼큐라고 버블티랑 지파이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지금도 있으려나. 생각해 보니 싼큐에선 버블티에 대한 기억보단 갓 튀긴 지파이를 사서 학교 잔디밭에서 맥주랑 먹었던 기억이 나네.
3.
작년에 말레이시아에 처음 갓 와서 마구잡이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쇼핑몰에 로비 의자에 지쳐서 앉아있는데 눈앞에 버블티 가게가 눈에 띄었다. 마침 목도 마르고 조금 출출하기도 하니 버블티를 마시면 딱 좋을 것 같아서 밀크버블티를 시키고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픽업대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내가 주문한 버블티가 나왔는데! 앗! 안에 타피오카 펄이랑 이상한 누들 젤리같은 것이 들어있었다!!!!! 하 그 누들 젤리는 물컹하기만 하고 딱히 맛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너무 별로였어.
그때 난 말레이시아 버블티는 펄만 있는 게 아니라 이상한 젤리도 넣어준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건 아니었다. 다른 버블티 브랜드 가게에서 시켜먹어보니 원래 내가 생각한 딱 그 버블티였다. 버블티는 대만에서 시작됐다고 들었는데 말레이시아에도 버블티 브랜드가 엄청 많았다. 길을 가다보면 귀엽게 생긴 간판이 있길래 자세히보면 대부분 버블티 가게! Tealive, Chatime, Daboba 등 수십가지는 넘는 것 같았다. 특히 큰 쇼핑몰엔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버블티 브랜드 공차가 대부분 들어와있는데 공차 앞에 이승기 입간판이 버젓이 서있다.
4.
보바티. BOBA TEA. 말레이시아 친구들은 버블티를 보바티라고도 부른다. 작년에 회사에 디자이너로 차이니즈말레이시안 친구가 인턴으로 들어온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나름 디자인 감각이 좋았다. (비록 내가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이렇게 표현한 건 걔가 했던 디자인이 너무 나랑 코드가 잘 맞았고, 개인 프로젝트 등 포트폴리오만 봐도 너무 내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하루는 그 친구가 과거에 만든 디자인 작품들을 보는데 BOBA TEA라고 쓰여 있길래 이름이 귀여워서 보바티는 뭐냐고 질문했다. 그랬더니 버블티래. 귀여워. 글 쓰다 보니 갑자기 버블티가 먹고 싶네. 버블티를 주문해야겠다!
-Hee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작업을 하다보면 가끔 생각나는 버블티! 달달한 타로 밀크티도 맛있지만 입안에서 함께 오물오물 씹히는 버블까지. 이토록 깔끔한 간식이 있을까?!
일하다가 버블티 시켜먹기!
지루한 일상에 1)밀크티 메뉴 2)버블을 넣을지 3)당도는 어느정도로 할지 등을 정하는 이 사소한 일이 이토록 즐거울줄이야.
가끔은 이렇게 함께 느끼는 잠깐의 행복이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Cheol
마시고 들이키는 것에 대한 취향은 저작운동이 필요한 음식에 대한 취향보다 못해도 예닐곱 배쯤은 더 단단히 고착되어있다. 편향된 취향은 오롯이 무가당과 무유단백으로만 수렴한다. 제로 슈가를 주장하는 아스파탐 음료 역시 세상에 나오자마자 취향의 거름망에 걸러져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을 만큼 단 맛에 대한 거부감의 벽은 높다. 그래서 내가 마시는 것들이라고는 생수, 탄산수, 블랙커피 그리고 몇 종류의 차와 주류 일체. 액상과당을 삼켜서 얻는 것이라고는 칼로리와 목에남는 찝찝한 끈적임뿐이라 그 외의 것들은 조금도 궁금하지 않고 시도해보고 싶지도 않다.
조금 다른 이유로 유단백질을 포함하는 음료들 역시 멀리한다.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 게 아닌가 싶은 무가당에 대한 집착과는 달리 그 맛 자체를 좋아해서 정말 많이 마셨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는 서서히 거리를 두다가 결국에는 완전히 벽을 쌓게 됐다. 위장의 기능이 떨어져서인지, 아니면 우유가 몸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빚은 플라시보효과 탓인지는 모르지만 유당과 유단백이 포함된 음료를 마시면 높은 확률로 속이 불편해진다. 다행히 우유의 고소한 맛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조금의 미련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버블티를 한 번도 마셔보지 않았다. 대만에서 물 건너 온 흑당 버블티가 한참 유행하고 있었을 때도, 주변에 마땅한 카페가 없어 별 수 없이 공차에 들려야 했을 때도 버블티는 마시지 않았었다. 취향이 이렇게 점점 굳어져서는 딱딱하게 고착화된 편협한 인간이 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하지만 언젠가 어디서는 한 번쯤 마셔보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는 놀랍고 즐거운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며 버블티는 앞으로도 죽 미뤄둔다. 혹시 대만에가게 된다면 한 번쯤 시도해볼지도 모르겠다.
-Ho
2021년 7월 1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