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스무 번째 주제
너를 떠날 때 그랬다.
눈물이 쏟아져 나오려는 걸
애써 누르고 나니
더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를 떠나야 한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고 느꼈던 너를 밀어 내면서
마음을 통째로 뜯어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망설일 틈이 없었다.
단박에 널 끊지 않으면
나는 널 영영 떠나지 못했을 걸 아니까.
널 아꼈던 만큼
한 톨의 아쉬움도
한 치의 망설임도
남겨서는 안되는 걸 알았다.
그것이 결국 내 미련으로,
네 곁에 남는 핑계가 될테니까.
그렇게
너를 떠날 때 그래야만 했다.
-Ram
1.
H는 내가 뭘 하자고 말하든 정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 좋다고 했다. 어딜 가자고 해도, 이걸 하자고 해도, 저걸 먹자고 해도,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하자고 해도, 내 의견에 반기를 드는 일이 거의 없었다. H라는 친구를 처음 보았을 땐 딱히 큰 임팩트도 없었고, 거의 은은하다시피 한 존재감을 띄고 있었기에, 파스쿠찌에서 커피를 마실 때에도, 망고식스에서 망고 주스를 마실 때에도, 친구의 공금으로 같이 빕스를 먹으러 따라갔을 때에도 지금과 같이 막역한 사이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처음엔 이 친구가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인가 싶었는데, 오래 알고 지내면 지낼수록 싫은 건 싫다고 자기 주관을 뚜렷하게 말하는 성격인지라 다행히 내가 제안한 것들이 이 친구도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어서 그렇게 망설인 적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에도, 지금도 언제나 한결같은 내 친구 H.
2.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건 생각보다 참기 어렵다.
-Hee
이번 주는 휴재합니다.
-Ho
한 치(寸)는 센티미터법으로 3.03cm다. 치 라는 단위는 손가락 한 마디의 길이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치'를 관용어로 사용하는 속담이 몇 가지 있다. 세치 혀를 조심해야 한다-에서 혀의 길이는 9.09cm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을 때-망설임의 길이는 3.03cm다. 손가락을 한 마디 잡아 가슴팍께에 대어 본다. 망설임 없는 마음이란 손가락 한 마디의 길이만큼의 머뭇거림을 허용하는 것이다.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거리의 생각들은 무엇이 있을까. 나는 그것들을 하나 둘 헤아리다가 그 무게가 지긋하여 눈이 감겼다.
-소고
2022년 1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