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오십 번째 주제
즐거운 일은 끝이 났다.
더 이상 즐거울 일이 없는
다음은 적당한 불행일 줄 알았다.
그런 안일한 생각들이
균열을 만들고,
의심하게 만들고,
관계를 부수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나를 만들었다.
우리는 명백한 끝자락까지
와있던 것인데,
애써 모른척
도망치고 싶었다.
저 끝의 끝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야
우린 이 도망을 끝낼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시작과 끝이 되어주고,
곁을 내어주고,
구원이 되어주면서
그렇게 뒤엉키며
파멸했다.
설령 아름답지 않은 마지막이었더라도.
-Ram
이렇게 대화가 안되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상대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을 한 것 같긴 한데(혹은 반대로 그 의중을 잘 전달했을 수도 있겠지만), 쓸데없는 에고들이 잔뜩 뭉쳐있는 것처럼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 다반사였고, 거기에 감정까지 섞여들어가는 바람에 늘 최악의 대화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제시한 방법들은 얼마나 비합리적이었던지. 싸워서 이기려고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닌데, 꼭 싸워서 (특히 본인이) 이겨야 끝이 나는 대화로 인해 대화를 하고 있는 상대는 금새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는 점점 짧아져 갔고, 사라져갔다. 덩달아 남아있던 객체에 대한 애정과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시간들에 대한 미련도 사라져갔다. 특히 지난 노력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버리니 결론에 쉽게 도달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Hee
내가 잘못을 했건, 그러지 않았건, 지영의 싫은 소리를 들을 때면 반사적으로 짜증부터 난다. 배려가 부족하고 이기적인 성격의두 사람이 만나서 그렇다. 여태 몇 차례나 서로의 상처를 마구 헤집어댔던 폭력으로 인한 공포감이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작동시킨다.
그런데 그보다 더 싫은 건 대뜸 화해하자는 말이다. 지금 거칠게 일렁이는 감정이 어떻든 일단은 덮어두고 넘어가자는 말이 늘 나를 미치게 만든다. 지영은 본인이 그런 식으로 덮어둔 일들(가운데 내가 잘못했던 일만)을 마음속에 차곡차곡 정리해두었다가 언제고 반드시 다시 꺼내드는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는 모르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잘잘못을 가려내고 잘못한 사람이 먼저 사과하지 않은 채 어떻게 화해라는 게 성립되는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이해 못 할 부류다.
오늘도 파국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우리. 아, 그랬지. 이런 게 바로 가족이었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혼을 걱정할 일도 없었을 텐데, 멍청하게 결혼 같은 걸 내가 해버렸었지…
-Ho
나는 파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세상을 힘들게 사는 다수는 무엇도 파괴하지 않으려 들다가 끝끝내 스스롤 파괴하기 때문이다. 파괴를 기피하는 이유는 자기 손을 더럽히기 싫다기보다는 조심스럽고, 배려심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낮은 확률로 파괴는 파멸적이기도 하다. 그치만 적당한 규모의 파괴를 안전장치와 함께 병행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마지막에 전체를 폭사하는 것과는 다르게 모든 이와 더불어 사는 가장 적절한 방법이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적당한 파괴란 파멸을 겪지 않고서는 도무지 배울 수 없다. 그래서 어릴때 많은 것을 겪어야 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것들을 많이 부숴봐야 한다. 때로는 소중한 것을 안목/판단/기분에 못 이겨 깨뜨려봐야만 안목/판단/기분을 절제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이쯤 되면 회복 가능한 시기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나는 누구도 파멸킬 바라진 않지만 파괴의 필요를 인정하지 않는 이에겐 파멸만이 있을 것이라 생각코 있으며, 그 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상황을 부인한다면, 나는 그 자신이 곧 타인을 파멸시키는 흉기임을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흉기인지 모르고 자신을 마냥 착하거나, 당하거나, 억울한 일을 겪는다고 성토하는 사람은 많다. 마치 내 마음이 식고 자신을 차도록 질리게 구는 클리셰-연인-판 스토리처럼. 내가 이렇게 의심을 거두잖는 이유는 필자의 경험과 혐의, 판정의 과정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 번도 틀린 적 없고, 끝없는 자기 합리화와 반복, 스톡홀롬 증후군은 (내가 이해하지 못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발병하기 때문이다. 30이 넘고, “나는 왜 이런 일이 반복해서 발생할까”의 반복이 3회 이상이면, (금전적으로 수렁에 빠지지 않은) 다수는 파괴하기 싫어서 파멸한 자신 탓이다.
-소고
2022년 8월 2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