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사백 아흔 번째 주제
뭐가 뭔지,
처음 상경하던 날
모든 것이 그랬다.
낯선 방의 공기
오래된 나무 침대의 삐걱거림,
오래 켜켜이 쌓인 먼지내음
그런 것들.
나는 괜찮지도, 괜찮지 않은지도
모르는 채로
어딘가에 내던져졌다.
12월 31일에서 1월1일이 된 것
뿐인 날에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스물, 서른
그렇게 나이를 채웠다.
나는 지금도 날 잘 모르겠어
그런 나를 당신도 모르겠지.
처음 상경하던 그 날의
공기처럼
여전히 나는 미숙한 성인으로
살아갈 뿐인데,
나는 정말 모르겠다.
-Ram
1.
꽁꽁 매여있는지도 모른 채 자고, 일어나고, 먹고, 싸는 것 등 모든 것이 즐거운 조랑말도, 훗날 위험이 도사리는 지도 모른 채 날마다 늘 같은 시간에 먹을 것을 마음껏 잔뜩 먹을 수 있는 돼지도, 조만간 생명의 소중함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학교 앞에서 삐약 거리는 병아리를 사 온 한 아이도 마냥 행복한 때가 있다.
2.
코앞이 보이지 않고, 내 발끝이 어디에 어떻게 닿았는지도 모를만큼 탁한 물에서 헤엄치고 또 헤엄치고. 발끝에 채일 만큼 많은 물고기들 사이에서 둥둥 떠다니며 햇빛이 나뭇잎에 비추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이 천국임을 느꼈다.
3.
이해와 있는 그대로의 인정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은데 그게 어려운가 봐.
-Hee
아빠 몸은 좀 어떻데요? 그러니까 진작에 병원부터 데려갔어야 했는데. 민간요법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요. 지금은 좀 어때요? 어디 아프다고 하시진 않고요?
잘 모르겠어. 너네 아빠 고집이 보통 고집이니. 자연치유도 하고 병원 치료도 받고 같이 병행했으면 좋았을걸. 아빠는 말이 잘 없으셔. 너네 아빠가 언제 아프다고 말하는 거 들어봤니. 잘 몰라~ 엄마도 잘 모르겠어.
몇 주 전 고모부 장례식장에서 엄마를 만났을 때, 괜히 엄마를 다그쳤다. 잘 모르겠다는 엄마 말이 유독 마음을 괴롭힌다. 괜찮을 거란 말밖에 안 하던 엄마라서. 한심하다. 나는 왜 엄마의 상심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빠가 괜찮아지길 바라는 믿음을 왜 내가 아닌 엄마에게서 찾으려 했을까.
-Ho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 얼마 안 되었다.
예전에는 모르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다고 굳게 믿는 게 답답하다.
모른다고 인정하면, 세상은 더 배울 게 많고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세상을 신뢰하면, 세상은 더 좋은 것들을 나에게 가져다준다.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이 주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들이쉬는 숨에 좋은 것들이 나에게 끌려오고, 내 쉬는 숨에 탁한 것들이 나간다.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
-인이
2023년 5월 2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