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육백 다섯 번째 주제
나는 적당한, 아니 어쩌면 꽤
저장강박 비슷한 게 있다.
뭔가 떨어지기 전에
꼭 미리 쟁여두고 싶다.
뭐랄까
나는 그냥 아쉬운게 싫었다.
작게는 돈부터
물건이며 기계며
이런 저런 것들이
아쉬워지기 싫었다.
그래서 자꾸 모아두려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다.
좋으면 좀 나누기도 하고
더 모으기도 하고
그런게 내 마음의 안정인가보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도 물건도
모아두려는 생각이 자꾸만 커진다.
무소유는 꿈도 못 꾸는,
야금야금 모아두려는 나만의 욕망.
여전히 모순 가득한 나.
-Ram
별 이유 없이 모든게 곱게 보이지 않아 괴로운 날,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한 날, 자꾸만 스스로 작아지는 날, 손톱의 거스러미 마냥 작은 것들이 괴롭히는 날들을 대비해야 한다. 무방비하게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음악들, 나의 장점을 응원해 주는 소리들, 삶의 의욕을 높여주는 순간들, 멀쩡하게 살아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날씨들, 별것도 아닌 바보 같은 것들에 대해 농담을 주고받으며 같이 웃고 있는 사람들, 일상적인 것을 하고 있지만 특별함을 불어넣어주던 공간들,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향기들,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지가 어디든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던 거리들, 눈뜨자마자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집 밖을 뛰어나오던 아침들, 꽁꽁 묶어있던 마음을 몽글해지게 만드는 글들을 모아두자.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무너지지 않게 만들고, 나다움을 빚어주는 것들을 모아두자. 그게 인생을 살면서 큰 보물이 되겠지.
-Hee
1.
한때는 책을 열심히 모았었다. 당장 읽지 않고는 못 배길만한 책들도 있었지만 여태까지 한 번도 읽지 않은 책들도 꽤 있다. 그럼에도 알라딘에 팔아치우는 일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책들. 몇 번이나 이사를 하면서도 끝내 처분하지 못하고 같이 옮겨 다닌 나의 동반자들.
또 캠핑 장비도 열심히 모았었다. 누군가에게는 유행이 한참 전에 지나간 고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익숙하고 정이 들 만큼 든 보물들이다. 장비에 연연하지 않게 될수록 캠핑이든 백패킹이든 자연을 즐기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된다는 걸 깨닫기까지 긴 시간 나와 함께 해준 나만의 클래식들.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져서 쌓이는 물건들에 질려버릴 때쯤 주기적으로 미니멀리즘 병이 도졌었고, 그간 버리고 또 버렸는데도 여전히 남아있는 물건들은 이제 평생 함께하게 될 것만 같았다. 육아를 준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점점 쌓여가는 육아용품에 돌아버릴 것만 같은 나날이다. 눈을 뜨고 집구석 어딜 둘러봐도 스트레스가 즉각적으로 쌓인다. 별수 없이 여태 모아둔 물건들을 또 어떻게든 버리고 공간을 마련할 궁리만 하게 된다. 그게 무엇이든 모아두는 일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비하는 미련한 일이라고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2.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제 책과 캠핑용품까지 정리하고 나면 나만의 물건이라고 할 게 정말이지 거의 없어질 텐데, 그 사실에 작은 쾌감이 든다. 정리와 청소, 버리기 따위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는 지영의 물건은 여전히 집 안 구석구석 쓰레기처럼 굴러다니고 차고 넘치도록 많긴 하지만 말이다.
-Ho
나는 별 걸 모으는 데 취미는 없다.
다만, 엽서나 카드들을 한 데 모아둔다.
쇼핑몰에서 산 옷과 함께 동봉된 카드들,
여행가서 샀던 엽서,
일러스트 페어에서 데려온 일러스트 등
짜잘짜잘 모아놓으며 분위기에 맞는 짝을 찾아주다보면
내 방 곳곳에 각기 다른 분위기가 생긴다.
어쩌면 색깔별로, 가끔은 풍경별로 그렇게 정리하면서 나의 취향도 알고 때때론 영감을 주기도 한다.
작게나마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나를 정의시키곤 한다.
-NOVA
2025년 8월 1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