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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Apr 04. 2019

마스크 너마저도

 2005년작 소설 「불란서약국」에는, 주인공인 중년의 약국종업원 '지종녀'가 그해 유난했던 봄철 황사를 반추하는 대목이 있다.


 봄을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 버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봄은 원래 비가 드문 계절이라지만 땅 한번 제대로 젖지 않고 그렇게 가물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대륙에서 불어오는 누런 모래바람까지 기승을 부려 겨울도 아닌데 마스크를 사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들어서면 드링크부터 찾았다. 조제실 앞에 놓인 아이비가 누렇게 떠서 잎을 자주 따주었다. 상가 주차장을 인도와 갈라놓으며 그림자를 드리워주는 플라타너스도 함께 기운을 잃고 타들었다. 잠시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나는 시선을 가리는 손님들 사이로 고개를 외로 빼고 물탱크를 실은 구청 트럭이 자주 물을 뿌려주는지 초조하게 지켜보곤 했다. 

            

세월은 흘러 지금은 2019년이다.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시사용어(?) 가운데 '잇템'이 있던데, 요즘 잇템은 황사마스크, 그것도 검은색이다. 이쯤에서 병원의 하얀 마스크를 떠올리는 당신은, 미안하지만 아재다. 지명수배범도 아니고, 흉측하게 검정색이라니 하는 당신도, 아재다.


글을 읽은 후 거리에 나가 한번 둘러보시라. 검은색 마스크를 쓰거나 턱에 내려 걸친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게 될 터이니.


어쨌든.

보건 혹은 방역마스크는 KF94KF80 마스크 두 가지가 있다. KF95, KF99도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다. 전염병이 창궐하거나 독가스가 유출됐을 때 의료진이 쓰는 것이니까. 모두 식약처의 인증을 획득한 제품에만 붙는다.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는 불량 제조업체나 중국산이 아닌, 제대로 만든 마스크의 약국 판매 가격은 대략 KF80 2천 원이고 KF94는 3천 원 정도이며 통기성 좋은 부직포를 쓴 건 3천 500원까지도 올라간다. 여러 개가 든 덕용 포장이 당연히 더 싸다. 고령자와 아이들에게는 KF80만 권한다. 이유는 조금 뒤에 나온다.     


KF80 KF94가 대체 무엇인지 물어보는 탐구심이 강한 사람들이 있는데 설명을 듣고 나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거기 무슨 대단히 어렵고 심오한 뜻이 담긴 게 아니다. 그냥 한국 필터, 즉 코리안 필터(Korean Filter)의 앞 글자를 딴 게 KF다. 김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KF80은 평균 0.6나노미터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걸러낼 수 있고, KF94는 평균 0.4나노미터 크기의 (그러니까 더 작은) 입자를 94% 이상 걸러낼 수 있다. 복잡하게 숫자까지 외울 것은 없고 그냥 다음과 같이 기억하면 된다. 


KF의 F는 필터(Filter)를 뜻하므로 숫자가 크면 당연히
더 많이, 더 작은 것을 걸러낼 수 있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는 마스크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미세먼지를 더 많이 차단한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작은 입자까지 걸러낼 수 있는 필터가 든 마스크를 착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숨쉬기 어려운 상태를 견뎌야 한다는 뜻이고, 숨을 쉬는 게 어려워지면 당연히 쉽게 피곤해진다. 피부트러블의 위험도 커진다.  


그러니 대기 상태가 나쁘면 차라리 바깥 활동이나 외출을 삼가는 게 낫다. 물론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농부, 교통경찰, 미화원, 노점상, 노동자, 운동선수. 야외활동을 해야 먹고사는 사람들은... 그래서 정말 힘들다. 미세먼지 수당이 등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리면 KF94를 사용하는 게 좋겠고 그냥 나쁜 정도라면 KF80도 괜찮다고 설명해주어도 사람들은 무조건 더 높은 숫자의 마스크를 집어 드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역시 남의 머릿속에 있는 이유보다 자신이 발견한 이유에 더 잘 납득하는 것 같다.) 이게 다 공포를 조장해 구매를 유도하는 이른바 공포마케팅의 영향인 것 같아 좀 씁쓸하다.


 나 정말, 마스크 팔아서 돈 벌고 싶지 않다.


다행히 사람들의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공포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제자리로 돌아긴 한다. 냄비 끓듯 한번 부르르 끓고 아예 식어버리는 일만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것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2015년 소위 메르스 사태 때는 마스크며 손 소독제며 다들 얼마나 대비를 했던지, 내 기억으로 그해 겨울 감기환자가 확 줄었다. 공공 위생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셈이다.    

 

심각한 문제는 사실 딴 데 있다. 주제넘게도 나는 경제성과, 빈부 격차까지 걱정한다. 먼저 마스크 개당 가격이 너무 높다. (마스크 속에 미세먼지를 차단할 수 있는 필터가 들어가니 비쌀 수밖에 없을 것이라 짐작은 한다.) 더구나 세탁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아껴서 오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적당히 쓰고, 버려야 하는 일회용품에 가깝다.   


 "그럼 이거 일회용이예요?"

이렇게 물으면 내 대답은 옹색해진다. 한번 쓰고 버리라고, 차마 그렇게는 말 못한다. 필터가 얼마나 막혔는지 매번 테스트해 볼 수도 없고, 그렇다면 적당히 알아서 쓰라는 건데, 얼마동안 써야 하느냐고 다시 물어오면 더 난감하다. 약국에 마스크를 쌓아놓고 있는 나도 한번 쓰고는 아까워서 못 버린다. 차단 필터가 막히면 거의 무용지물임을 알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런 구구한 설명에 덧붙여 내 경험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편이다. 

 '미세먼지 매우 높음'인 날 1시간 정도 야외활동을 했다면 미련 없이 버립니다.

  

상황이 이러니 마스크에서조차 빈부격차가 나타날 수 있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게 그냥 천 조각 혹은 부직포에 불과한 물건인가. 최소한의 안전장치 아니던가. 초미세먼지는 그 영향이 당장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폐, 뇌, 심혈관 질환에 치명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2017년 명칭이 바뀌었지만 우리나라는 부유먼지를 미세먼지(PM10)로, 미세먼지를 초미세먼지(PM2.5)로 부르고 있다. PM1도 초미세먼지로 분류한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아이들 것만 사고 남편 것만 챙기는 주부들을 많이 본다. 지갑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한 봉지에 11장쯤 든 얇디얇은 1회용 마스크를 걸치고, "시리게 뿌연" 미세먼지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자의 그림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


공해와 환경오염을 줄여야 한다는 대전제 말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소위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 있는지, 또 얼마나 줄일 수 있는 것인지, 해결할 수 있기는 한지, 또 우리는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저 현장에서 느끼는 바로는 미세먼지 마스크에 당장 보험급여부터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경제적 수준이 만들어내는  ‘마스크 차별’ 사회.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아아 마스크 너마저도....



 

 수록 전통적인 봄철 황사가 그리울 만큼 대기 상태가 나쁘다. 올해도 3한4미, 사흘 춥고, (날이 풀려 기온이 올라가면) 나흘 미세먼지였다. 그리고 비도 없이 메마르기까지 했다.

 푸른 하늘을 본 날이 며칠이나 되었던가. 맑고 촉촉한 대지를 꿈꾸는 사막의 낙타처럼 우리의 눈이 아득한 사이, 봄날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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