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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Apr 11. 2019


막대 사탕 입에 물고

-미니소설

 A마트 지하에 위치한 아프지마오 약국의 공식 폐문시각은 밤 열한 시지만 대표약사는 대개 자정이 다 되어 약국을 나선다. 병원들은 진작 문을 닫았을 시각이었고 그나마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곳을 찾아 119나 휴일지킴이약국 검색을 통해 약국으로 달려오는 환자들 덕분이다. 


 느려터진 컴퓨터 백업 작업이 이십 분째 진행 중이거나, 조제내역 검토를 끝낸 처방전을 잠금장치가 있는 금고에 갈무리한 다음이거나, 심지어는 소등까지 마친 후 약국 진열대 위 롤스크린을 내리다 말고 환자와 맞닥뜨리게 되는 것인데, “마감시간이 지났다”며 돌려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전화도 마찬가지였다. 열한 시를 갓 넘긴 전화는 물론 받지만, 열한 시 십여 분부터는 전화벨이 울릴 때 그도 상당히 갈등하게 된다. 

 대개는 받는다. 그가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울리는 벨 소리는 제발 좀 받아주세요, 애원하는 것처럼 들린다. 아이가 열이 나서, 어머니의 급체로, 혹은 삼백 원짜리 관장약 하나를 사기 위해 전화벨은 그리도 절박하게 울리는 것이다. 

 어둠 속에 벨은, 그렇게 울린다.

 

  그렇다고 딱히 대단히 큰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날 그가 손에 쥐는 건 고작 천 원짜리 서너 장이거나 삼백 원짜리 (믿기 어렵겠지만 삼천 원이 아니다) 카드전표이기 십상이었다.

 그 시각쯤이면 건장한 그도 다리가 무척 아팠는데 심장으로 되돌아가지 못한 정맥 속 피가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오래 서서 일하는 노동자 특유의 직업병. 아래로 쏠린 피가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한곳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붓고 저리고 아픈 것임을 물론 그는 알고 있다. 차가운 찜질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그렇게 연장된 노동과 유예된 퇴근의 대가치고는 너무 ‘사소한’ 환자도 있기 마련이어서, 부어오른 그의 다리는 가끔 자신의 빌어먹을 책임감을 향해 정시에 마감하라고 슬쩍 꼬드기기도 했다.   

 그 유혹을 떨치려고 그는 아예 “내가 퇴근할 때는 ‘약국 마감’을 반드시 고지하겠으니 1층으로 들어서는 환자들을 약국 문 닫았다며 함부로 돌려보내지 말라”고 보안 팀에 당부해둔 터였다. 팀장은 알았다고 답했으나 팀 누구도 그 말을 심각하게 듣는 것 같지는 않았다.  


 때로 약국봉투 여백에 긴 편지를 쓰는 날도 있었다.   


 “해열제 A를 먼저 먹이고, 두 시간이 지나도 열이 내리지 않으면 집에 있다는 해열제 B를 먹이세요. 해열제와 함께, 냉각시트를 이마, 겨드랑이, 목 뒤 등에 여러 장 붙이셔도 됩니다. 찬물로 닦지 마시고 미지근한 물로 몸을 닦아주는 것이 열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만일 아침까지 열이 계속된다면 반드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약 값은 보안 팀에 맡겨주세요.”    


 급하게 휘갈겨 쓴 편지를 약과 함께 봉투에 넣어, 폐점시각 이후 유일하게 열려있는 직원 출입구 쪽 보안요원에게 맡기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누가 알아주건 말건 약사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봉사라 생각했고, 조금은 사치스러울 수 있는 이런 선행이 그에게는 아주 중요하다. 아니 중요했다.

 

 스러져 가는 오늘과 주저하는 내일이 교차하는 시간. 오늘도 자정이 다 된 시각에 퀴퀴한 냄새가 밴 비상계단을 올라오니 1층 마트 입구를 지키던 종수가 다리를 절며 그에게 다가온다. 

  “약사님, 이거...” 

 그 앞에 핑크색 막대 사탕 하나를 쑥 내민다.  

  “어. '스크류바'가 아니네. 스크류바 '사탕'도 있었어?”    

  

 종수가 내민 것이 아이스케키가 아니라 막대 사탕임을 알아차린 순간 우스꽝스러운 고인돌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단내 나는 그의 입에서 오래 전 CM송 한 소절이 저절로 흘러나온다.     

 비비 꼬였네...  


 아침 면도를 하고 나왔어도 그즈음이면 수염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그와 똑같이, 그새 거뭇거뭇해진 입 주위를 씰룩이며 종수가 다음 소절을 이어받았다.  


 들쑥날쑥해... 

  
 '...그래. 그랬을 거야. 무언가 비비 꼬였음에 틀림없어.'    

 지난 한 주는 정말 세상 모두가 그와 그의 약국을 향해 마구 적의를 쏟아내는 듯 여겨졌었다.

 과도한 책임감이 사달을 낸 것일까. 약을 찾아간 아이아빠라는 사람이, 의약품을 환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어도 되느냐, 명백한 ‘의약품 배달’이라며 보건소에 민원을 넣겠노라 을렀다. 어떤 날은 하는 것 봐서 민원을 취하(?)해 주겠다며 그를 모욕하기도 했다.     

 부채감을 느낀 보안 팀에서는 '요주의인물 1층 출현'의 무전을 지하로 날렸고, 지하 계산대 쪽 보안요원이 약국에 그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다고 달리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었으므로 그는 천연 사향이 들어간 우황청심원을 마시고 매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한 주가 지났다.

 후배 변호사가 조언한 대로 영업방해로 경찰을 부르겠다고 경고하자, 한몫 보려던 짓거리가 더는 통하지 않겠다고 판단했던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지만 보건소에다 결국 민원을 넣었다는 것을, 오늘 알았다.    


 그의 행위가 법적으로 어떤 문제가 될 리도 없었고 딱히 처벌할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민원이 들어온 이상” 그냥 넘어가지 않는 반듯한 공무원들이 기어이 그를 보건소로 호출했고, 마침 민 약사의 대학원 수업이 없는 수요일이라 한 시간 연장근무를 부탁하고 보건소를 방문해 경위서를 쓰고 나온 참이었다.       

 마트라는 노출된 공간에 있는 약국이기에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말로 혹은 눈빛으로 또 몸짓으로 휘두르는 폭력이, 여느 약국과는 달랐다. 말로 상대를 찌르는 것으로 존재감을 찾는, 마음이 병든 사람이 많았고 (유독 많았다.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약사를 마트 직원처럼 대해도 될 것 같은 (하지만 마트에서는 그래도 되나? 빌어먹을. 그렇게 대해도 되는 사람이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분위기에 취약했고, 그리고 언어폭력이 더해졌다.     


 그가 처음 약국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사회 전체가 조금 나아지긴 한 것 같다. 

카드사나 보험사에 전화를 걸 때 나오는 통화대기음은 이제 클래식 곡에서 음성서비스 제공자를 향한 언어 폭력을 경고하는 "산업안전보호법에 의거"하는 멘트로 대체되었다. 마트 캐셔나 고객센터 직원들 입에서도 “우리는 모두 감정노동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무조건적인 고객감동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져서 블랙컨슈머가 떼를 쓰는 일도 많이 줄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주 마음을 놓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어서 늘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웠고, 그는 자주 지쳤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기 전 그는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막대를 한손으로 잡고 자연스럽게 앞니로 비닐포장을 물어뜯었다.

 

  '아무렴. 막대사탕은 이렇게 먹어야 제격이지.'


 비비 꼬인 핑크색 사탕이 비닐을 뚫고 혀에 닿자 치명적인 새콤달콤함이 금세 입안으로 퍼졌다.  

 

 누군가의 작은 위로가 큰 힘이 됩니다.

 공익캠페인 같은 문장 하나가 그에게 떠올랐고 곧 먹먹해졌다.

 차고 투명하며 바람 거센 밤이었다. 


 보안요원인 종수는 다리가 불편하고 손도 조금 비틀려 있어 그가 따주지 않으면 비타민 음료 한 병도 못 마시는 신체장애를 가진 청년이었다. 오늘 그의 ‘보안’을 책임지고 그를 위로한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다. 


 비비 꼬인 영혼에 지친 한 친절한 영혼이, 친절한 또 한 영혼이 서툴게 내민 손에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부끄러움도 잊은 채 마음놓고 길게 길게 울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

 아참. 어린아이처럼, 입에는 막대 사탕을 물고.




 알베르 까뮈의 『작가 수첩』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들어있다. 

 

  그는 극도로 친절하기 때문에 그의 과민한 성격을 눈치 채기가 어렵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알 수가 있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언제나 그의 마음을 다치게 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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