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솟대에 대한 단상
더 높고, 더 먼 데를 향하는.
그리고 자유롭게 어디든.
이러한 인간의 염원은 때로 솟대라는 독특한 조형물에 담깁니다.
사전적 의미로 솟대는 "민간신앙을 목적으로 또는 경사가 있을 때 축하의 뜻으로 세우는 긴 대"입니다. 높은 장대 위에 기러기나 오리 등의 새를 형상화해 만듭니다. 지역마다 또 특정 시기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했어요. 고조선 때 만들어지기 시작해서 삼한시대에는 신성한 지역을 뜻하는 소도의 상징물로 인간의 소망을 하늘에 비는 천제에 반드시 필요한 도구였습니다.
자연과학적 시선으로 본다면 나무에게 이동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빛에 천착해 빛을 향해 굴절하지만, 붙박임이 나무의 본질이지요. 붙박여 서 있어야 하는 숙명을 가진 나무, 대지를 지향하는 나무에게 보헤미안이나 유목민의 특성이 웬 말이겠어요. 그런 나무에, 하늘을 나는(飛) 기러기와 오리라니요. 솟대를 처음 보는 순간 매료된 것은 그래서였습니다.
충북 제천 청풍호가 내려다보이는 금수산 아래 능강마을로 기억합니다. 산에 들에 계곡에 지천으로 널린 나뭇가지 가운데 마음으로 들어온 놈을 주워 터벅터벅 산을 내려와 알맞은 크기의 나무에 꽂아 솟대를 만든다... 보통 나무를 깎거나 가는 등 인위적 변형을 가해 솟대를 만들지만, 필요없는 부분만 툭툭 쳐 내는 간단하고도 소박한 절지(折枝)만으로 생긴 모습 그대로를 살려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금기의 장소에 높이 세워 올린 엄숙하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제자리를 지키며 뿌리박고 있는 나무에 소박하게 꽂아 만든 솟대라 더 마음에 들었지요.
소박한 솟대를 보며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속에는 자유롭고자 하는 나무의 꿈, 뿌리 내린 땅의 억지력과 생긴 대로의 불구를 초월해 날고 싶은 꿈이 담겼을 거라고 말입니다.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깃대에 매달려 열린 공간을 향해 흔드는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같은, 차마 떨치고 갈 수 없는 무게와 한계를 극복하려는 나무의 꿈을 내가 보았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소망을 빌기 위해 태어났지만 속으로 감춘 그 은밀한 욕망이 슬프기도 했어요.
그러나 이제,
나는 뿌리 내리지 않으면 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뿌리와 깃대의 엄청난 간극을 이제는 모른 체 할 수 없습니다. 방랑과 자유의 비원을 간직한 채로 붙박여야 하는 운명도요. 닻을 올리고 솟대처럼 깃대를 만들어 나아가는 시간도 있지만 돛을 내리고 정박하는, 지금 있는 자리를 돌아보는 시간도 있다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래서 슬픈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솟대는, 어떤 나무가 꾸었던 슬픈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