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무의 꿈 05화

불란서에, <불란서약국>이 있을까

ㅡ 파리여행1.

by 진주

리는 아주 사랑스러운 도시라고들 합니다.


가본 적 있어요?

아뇨.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오래 전 단편<불란서약국>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약국이 어떤 곳인지, 약국 근무가 무얼 뜻하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프랑스, 아니 '불란서'는 더 몰랐습니다. 물론 가본 적도 없었지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는, 솔페리노 다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불란서약국>을 썼습니다.


"다 그만두고, 어디를 좀 가려고요."

그녀가 다시 고쳐 말했다.

"여기서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조제실이 편했어요. 그런데 지 선생님. 세느 강의 유람선은 미라보 다리에 닿기 전에 되돌아온다고 해요. 나는 솔페리노 다리를 보고 싶어요."

(중략)
바람에 쓸리는 미루나무가 있는 둑으로 연결되는 그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는 사람이 제일 많다고 한다.

솔.페.리.노.

대숲을 휘감는 바람 소리 같은 불어발음을 따라 해본다. 내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왜 불란서라고 했던 것일까.

-끝-


파리. 프랑스의 수도.

옛날 우리는 이 나라를 불란서(佛蘭西)라 불렀습니다. 최대한 건조하게, 프랑스의 우리식 옛이름 불란서를 조명해봅니다.


프랑스측이 보내온 서신에서 1847년 라피에르(Augustin de Lapierre) 대령은 자신을 "대불란서국(大佛蘭西國) 수사 총병관(水師總兵官) 납별이(拉別耳)"라 소개하였다. -현종실록 중에서


어머니가 가시고, 우울하고 만사 시니컬해졌습니다. 입덧하는 여자처럼 밥을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체중이 많이 줄고 불면이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 과외 선생과 제자의 인연으로 만나 사십 년째 나를 "쌤"이라 부르는 혜경이가, 자신의 이번 파리 출장에 꼭 동행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쌤, 그냥 아무 생각 말고, 이번에는 정말 나랑 같이 가요."

잠을 이룰 수 없던 날 항공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았습니다. 마침 혜경이 말했던 날짜에 파격적인 가격의 상품이 있었어요. 같은 비행기로 출발할 수 있다는 말이었지요. 나는 저질러보기로 했습니다.


항공편이 해결되니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습니다. 공식적인 출장이므로 호텔은 예약돼 있었어요. 거기서 함께 묵고, 혜경인 일하러 가고 나는 혼자 놀고, 주말을 함께 보내고, 그리고 나는 먼저 돌아오는 것으로 일정을 짰습니다. 정말 아무 계획도 없었고 사실 큰 의욕도 없었습니다. 그냥 무조건, 따라서 가보자 했던 것뿐.

고흐의 그림만 보고 와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파리하면 오르세죠. 아닌가요?

오르셰미술관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인상파의 웬만한 그림은 다 있는 것 같더군요. 세계 제일의 관광지답게 파리에는 뮤지엄패스라는 게 있었고, 2일권을 구매하니 며칠 후 모나리자가 미소를 짓는 작은 수첩 같은 것이 집으로 배달되었습니다. 루브르, 개선문, 퐁피두센터(현대미술관이 있지요), 지금은 불 타버린 노틀담 성당까지. 모두 48시간 이내면 이 패스 하나로 입장할 수 있다고 했어요. (베르사이유 궁전은, 가보고 싶은 마음이, 요즘 애들말로, 1도 없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참...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했어요. 고흐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 오베르쉬르와즈까지 가보고 싶어졌어요. 다행히 좋은 가이드와 연이 닿아 파리에서 가장 핫한 전시라는 <빛의 아틀리에>도 보고 고흐가 마지막 숨을 거둔 곳까지 다녀올 수 있게 일정을 짤 수 있었습니다.

가이드 말로는 시즌이 끝나 오베르의 <고흐의 집>에 있는 '고흐의 방'은 공개가 안된다고 했지만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결과 내가 파리를 여행하는 날까지는 유효하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1st March to 24th of november 2019, Wednesdays to Sundays! 정말 아슬아슬하게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답니다.

테제베를 이용해 테제수도원를 방문하고 영성 가득한 주말을 보내려던 계획은 취소했어요. 12월 초 테제베 파업이 예정돼 있는데, 이에 앞서 드문드문 게릴라 파업을 강행한단 정보가 있었거든요. 월요일에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꼭 타야 하고, 무엇보다 혜경이는 월요일 아침 일찍 중요한 미팅이 잡혀 있어 만일 파업으로 열차를 타지 못하면 낭패도 그런 낭패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랴부랴 가이드에게 연락해 (카톡은 참으로 좋은 서비스죠?) 주말 일정을 부탁했습니다. 금요일에는 퐁텐블로를 거쳐 바비종에 있는 밀레의 아틀리에를 방문하고, 토요일은 빠리 이곳저곳을 무지하게 많이 걸으면서 라틴 쿼터의 영성 체험(?)을 하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하고 조금씩 두려워졌습니다. 제자는 출근하고, 내가 혼자 돌아다녀야 한다는 게 막막하게 여겨졌어요. 게다가 나는 영어도 서툴고 (어차피 영어는 통하지도 않는다지만), 외국에서 혼자 다니는 것도 처음이었어요.

막막함과 불안감을 떨치는 길은 역시 열공뿐 입니다. 오르셰, 루브르, 고흐의 집, 마이리얼트립, 하나투어, 그리고 각종 블로그를 섭렵했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작품 리스트를 만들고, 오르셰에 그 작품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회랑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리고 관람 동선도 짰지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몇 개의 엑셀 파일은 정말 보석처럼 값진 자료가 되었습니다. (공유할 용의가 있으니 생각 있으신 분은 요청하시길.^^) 아직은 지적 욕구가 녹슬지 않았음도 확인할 수 있었죠.


뮤지엄패스

전자항공권 여정안내서

국제운전면허증(소매치기가 유명하다니 여권은 호텔에 두고 다니기로)

나비고 발행용 증명사진 1장

루브르 입장권 모바일 예약증(뮤지엄 패스를 가진 사람을 위한 예약 사이트가 따로 있다)

축산관계자 모바일 출국신고( 동물약품 판매약국 약사는 출입국 신고를 해야 한다)

호텔과 인근 명소를 도보로 이용할 때 필요한 지도 출력(로밍 폰의 테이터를 아껴야지)

파리 20개 구역을 개괄하는 지도(동서남북 아래 위를 알아야 길을 나서지)

중요한 불어 표기들(가령 La tour Eiffel, Arc de Triomphe, 역이름 몇 개... 악상떼기, 악상그라브 같은 건 사실 글로 쓰기도 어렵다. 아, 불어 오랜만에 쓰네... )

발음을 익혀둘 필요가 있는 기본표현 몇 개 (Je serai à L'hotel Rochester champs Elysees...

............. 나열하고 보니 이런. 완전 시험보러 가는 학생 분위기네요?


어쩌면 쓸모 없을지도 모를 것들...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냥, 내게는 아무 생각없이 몰두할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일도 하게 됐습니다. 산책도 조금씩 하고 그렇게.

산 사람은, 살아갑니다. 어머니가 가셨어도.


불란서에 간다며 불란서약국을 나간 약사 김수완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약국에 남긴 유품을 가지러 언니가 방문하는 것으로 작품은 끝이 납니다. 내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왜 불란서라고 했던 것일까 이렇게 주인공 '나'는 혼잣말을 하지요.


문득, 생각합니다.

불란서에는 불란서약국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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