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무의 꿈 06화

미안하지만 사진은 없습니다

-파리여행2

by 진주

파리 여행에 가지고 갔던 여러 리스트 가운데 가장 많은 메모가 붙은 것이 오르셰 미술관 관람 동선입니다. 나름대로 준비를 꽤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모바일'이란 수식어가 붙은 여러 쿠폰과 예약증과 항공권 말고도, 따로 종이(!)에 출력해서 챙겨갔으니까요. 휴대폰이나 모바일 예약을 믿지 못해서는 아니고, 그냥 아날로그 세대 특유의 불안감이라고 할까요.

오르셰미술관에서 꼭 보고 싶은 작품 리스트와, 그 크고 낯선 곳에서 헤매지 않으려고 짠 관람동선, 구글 맵에서 뽑은 호텔 주변지도며 오르셰나 루브르까지의 길찾기 지도(물론 도보로), 파리 20구역을 개괄하는 지도 등 모두 열 장이 넘었으니 시험이라도 보러 가는 학생 같아서 짐을 싸며 혼자 많이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고요 글쎄. 11월 22일 한국시각으로 오전 1:45. SNS에 짧은 글을 올리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휴대폰을 소매치기 당했습니다. 파리에 와 딱 한번 SNS에 포스팅했는데 그게 마지막이 되고 말았던 것이지요. (다음해 코로나시대가 왔으니 정말 마지막이네요.ㅠ)


그날 좀 많이 걷기도 했지만 (루브르를 나와 퐁피두센터까지, 다시 호텔까지 걸어 돌아왔으니 4구 오텔드빌에서 8구 엘리제까지, 대체 얼마를 걸은 거야!) 한국 시간으로도 가장 졸릴 시각이어서 저녁을 먹으러 다시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호텔로 돌아올 때 버거킹에서 뭐라도 사 들고 왔어야 했는데 피곤해서 그냥 들어오고 말았지 뭡니까. 제자는 그날 회사 내 넘버2와 만찬 미팅이 있다고 했으니 혼자서 뭘 먹기는 해야 하는데... Monoprix(모노프리)에서 초밥과 과일을 사와 해결할 요량으로 방을 나왔다가 그때 막 퇴근하는 제자와 승강기 앞에서 마주쳤어요. 서울서 준비해 온 선물을 포장하려고 약속 장소로 가기 전 잠깐 짬을 내 (호텔과 그녀의 회사는 도보 10분 거리) 들렀노라고, 근처 Zara Home에 같이 가자고 합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노리개의 길이에 맞는 포장지와 박스를 고르기가 쉽지 않았어요. 키가 큰 제자가 선반 위 포장 박스까지 집어 내렸지만 사이즈가 마땅치 않고... 암튼 꽤 시간을 보냈습니다. 방심한 채로 말이지요. 제자가 계산을 했고, 바로 옆 Monoprix에 들렀다 돌아오는데 왠지 호주머니가 허전하더라구요. 그래도 뭐 호텔에 두고 왔거니, 했죠.

없었습니다! 호텔방 어디에도 없었어요. 되돌아가 두 곳을 다 살폈지만 있을 리 만무했죠. 호주머니에 넣었을 뿐 손에는 들지도 않았으니 어딘가에 폰을 놓았을 리도 없었고요. 카톡으로 보이스톡을 보내자 신호만 울렸고, 전화를 거니 통화연결음 두어 번만에 아예 끊어져 버렸습니다. 그때 당했구나! 하는 느낌이 확 왔습니다. 다시 들어와 폰을 들고 나간 게 화근, 아니 차라리 마주치지 않았다면 좋았을까요. 아닙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죠 뭐.

일이 터지고 나는 더 멍청하게 굴었습니다. 서울이었다면 상황 판단을 잘했을 텐데 바보같이 보안요원이며 CCTV 타령이나 하고 말이지요. 그래도 그녀가 중요한 약속에 늦으면 안 되는데... 생각은 했습니다. 자기 때문이라고 자책할까 그것도 신경쓰였습니다. (호텔 PC에서 클라우드나 구글 포토에 접속해 자료를 복원하려던 내 생각은 그래도 옳았어 혜경아.^^ 그놈의 호텔 PC. 내 짧은 영어에, 컴퓨터에 관한 지식도 없고, 호텔 지배인도 아는 게 없고, 자꾸만 블럭돼 구글 접속이며 PC용 앱을 다운 받는 데 실패하고 말았지만.)

혼자 우두커니 있는데 시간이 흐르자 그제야 중요한 것이 생각나지 뭡니까. 아 사진들! 휴대폰이 아니라 차라리 카드나 현금을 잃어버리는 게 나았겠다 싶더군요.

경찰에 신고해 폴리스 리포트를 받아서 보험금이라도 받자는 인터넷 검색결과를 그녀가 알려줬지만 번잡함이 싫었고 게다가 그 긴 IMEI번호(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를 누가 어찌 기억하냐고요. 어디다 적어놓았는지도 당황해서 기억도 안 났는데요.

남은 사진이라곤 SNS에 올린 몇 장이 전부였습니다. 폰을 잃어버릴 것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그날 첫 포스팅을 했었는데... 그것 빼고는 파리에 도착해 사흘 동안 찍은 수백 장의 사진이 몽땅 내 수중에서 사라지고 만 것입니다. 바로바로 친구들에게 보내주고 SNS며 카톡에 데이터요금 아끼지 말고 많이 올려놓을 걸, 후회가 됐습니다. 당연히 구글 포토에도 파리 사진은 남아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별로 아쉽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억해내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품 파일을 날려버리고 멘붕이 와도, 제대로 복원할 수 없다면 내 글이 아닌 게지, 하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할까요.


고흐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오베르쉬르와즈, 그 성당 앞을 비추던 양광(陽光)을 기억합니다. 오래 그 풀밭에 앉아 있었어요.

11월의 와즈 강변을 오래 오래 걸었어요. 햇살에 일렁이던 아름다운 나무들과 느리게 흐르며 반짝이던 강물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오베르쉬르오아즈 성당.

(오베르를 안내했던 채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

세잔느가 그린 사과와 화병이 있는 정물화가 그렇듯이 우리 눈은 실제로는 이렇게 성당의 모든 면을 한눈에 바라볼 수 없다. 인상파의 그림은 그래서 이전과 달랐을 것이다.

고흐 무덤 앞 나의 헌화. 까마귀가 날아올랐음직한 들판에 핀 꽃을 꺾어 작은 꽃다발을 만들었다.


솔페리노 다리에서 본 세느강과 파리의 저녁 하늘. 카톡 프로필로 올려놓는 바람에 살아남은 사진이다.

맞아요. 마음에 담아온 것으로 족합니다. 사진을 꺼내 볼 수는 없지만 오르셰 미술관에 갔고, 마음껏 보고 싶던 그림을 보았고, 사람들의 약속과 맹세를 매단 자물쇠로 한껏 무거워진 솔페리노 다리를 건너 콩코드 광장을 지났고, 그랑팔레를 거쳐 호텔까지 걸어서 돌아왔던 내 튼튼한 다리와 자신감을 기억합니다.

사족.

제자와 지낸 열흘이 참으로 소중했습니다. 열아홉의 혜경이도, 스물을 갓 지난 과외쌤도 아닌, 이제 환갑이 가까운 여자들이었습니다. 1980년에 처음 만나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가정을 이루어 갖게 된 지금의 가족보다 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셈이죠. 가끔은 소식도 없이 지낸 시간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각자 삶을 살았고, 아팠고, 행복했고, 그리고 늙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먼 곳으로 나를 데려가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요.


꼭 행복해야 해.

쌤도 행복해야 해요.


그렇게 파리를 떠나왔고, 파리의 시간이 내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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