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와 연꽃(1)
모두 다 꽃이야 - 작사 작곡 /류형선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선준이가 유치원에서 동요를 배워왔습니다.
‘모두 다 꽃이야’라는 노래입니다.
아이들이 꽃이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해서 따로 논쟁할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올해 봄쯤엔가 선준이 친구 승민이 엄마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승민이 엄마는 ‘숲 선생님’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숲'을 해설해 주는 선생님입니다.
제가 선준이와 꽃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 보고 승민이 엄마가 넌지시 말합니다.
“아이들은 꽃 별로 안 좋아해요”
숲 선생님이다 보니 저보다는 '어린이+꽃' 데이터가 많으시겠지요.
저는 우리 선준이가 꽃을 무척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그 말이 선뜻 이해는 안 됐습니다.
그래도 숲 선생님의 데이터가 그럴만한 이유는 나름 추정이 됐습니다.
“아이들은 자기가 꽃이라서 별 감흥이 없는 게 아닐까요?"
‘모두 다 꽃이야’라는 동요는 그런 측면에서 좀 슬픈 구석이 있습니다.
동요는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작사와 작곡은 보통 어른들이 하고요.
어른이 어린이를 생각하며 만든 노래인 셈입니다.
사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모두 다 꽃이야”라고 이야기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강조할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까요.
주장하지 않아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모두가 꽃이니까요.
자신이 꽃임을 잊어버린 어른들이 많다 보니, 모두 다 꽃이야 라고 노래까지 불러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무언가 가르쳐 주고 싶어도요.
사실은 가르쳐 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을지 모릅니다.
어른들은 가르침을 빙자해서 자신의 후회나 한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꽃'은 저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네팔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2011년 '세이브더칠드런'이라는 NGO에서 ‘네팔 학교짓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적이 있습니다.
네팔에 학교를 지을 비용을 한국에서 직접 모금해서 현지로 떠나는 일정이었습니다.
삼청동 거리에서 길 가는 행인들을 붙잡아 가며 모금을 받았습니다.
‘네팔 벽돌’이라고 이름 붙인 다이어리를 미끼 상품으로 활용했습니다.
사람들은 ‘다이어리 한 권 산다’는 개념으로 모금에 동참했습니다.
사실 다이어리 제작에 들어간 비용은 봉사자들이 기부한 돈이었습니다.
저는 할당받은 다이어리를 다 ‘팔지’ 못해서 제 사비로 상당 부분 채워 넣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제 주머니에서 꺼내 모금함에 넣은 돈을 가지고 네팔로 떠났습니다.
네팔 봉사활동의 의도는 ‘좋은 일을 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직장을 관두고 진지하게 진로 고민을 하던 때였습니다.
네팔에서 좋은 일도 하면서, 고민도 정리하고, 자소서에 넣을 글감도 발굴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싫지는 않았지만, 딱히 좋지도 않았습니다.
강아지를 더 사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저희가 학교를 지을 곳은 네팔 카브레 지역에 있는 산속 마을이었습니다.
트레킹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악'산에서 매주 단련한 이유가 다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마을에 잘 도착했고,
네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환대'라는 것을 처음 받아본 것 같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봉사자들을 위해서 꽃목걸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멀리서 본 저는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꽃목걸이를 받을 줄을 설 때는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제가 꽃목걸이를 받는 순서가 되었을 때는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차마 숙였던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모두 다 꽃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은 아이들에게 저는
"미안해. 나는 아니야"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은 제 인생에 잊지 못할 부끄러운 날입니다.
봉사한답시고, 좋은 일 좀 했다고 자부했던 그 알량함이 너무도 부끄러웠습니다.
네팔 아이들은 꽃목걸이로 저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네팔에서 정확히 알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제가 해 줄 것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제가 배울 것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제가 꽃이라는 사실을요.
모두 다 꽃이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오늘도 선준이에게 슬쩍 물어봅니다.
"선준아, 엄마도 꽃이야?"
"응.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