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홍방마라탕_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신체 기관에 대하여

소설

by mina

space_라홍방 마라탕


출처 : 라홍방 마라탕 사이트



“격정적인 고통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

M은 가끔 뜬금없는 질문을 한다.

“격정적인 고통이라니? 무슨 뜻이야?”


M과 나는 마라탕 집에서 큰 채반을 들고 각종 채소를 골라 담고 있었다.

“저기 메뉴판에 말이야, 마라탕의 맵기 정도를 고르라고 쓰여있더라고. 그리고 가장 매운 4단계가 ‘격정적으로 매운맛’이라더라.”

아- 오늘은 맛에 대한 이야기로군. M은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나는 대로 뒤죽박죽으로 던져 말하는 타입이다.

“선택적 고통이라는 건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더 힘든 고통으로 감각을 마비시켜 버리는 거지. 단맛도 신맛도 아닌 그저 통증을 맛이라고 착각하며 그 순간을 무마시키는 거라고. 너도 그럴 때가 있지 않았어? 누군가 너를 괴롭히면 미친 듯이 바쁘게 일에 몰두해서 정신과 감각을 혼미하게 만드는 뭐 그런 상황.”


나는 분모자, 중국 당면 그리고 목이버섯 한 줌을 집게로 담아 채반 위에 풍성하게 올렸다. 나는 미끌미끌한 녹말과 버섯이 매운 마라와 함께 후두부를 타고 스르륵 넘어가는 그 향과 느낌을 좋아한다.

“음. 알 것도 같아. 마치 맹숭맹숭한 맛 말고 짜릿하고 자극적이되 격정적인 사랑처럼. 고통스러울 줄 알면서도 끌리는 상대를 선택하는 거지. 자, 그럼 우리도 격정적인 연인이 되어볼까? 그런데 격정적인 사랑이란 건 대체 뭘까?

그녀는 아삭해 보이는 청경채를 집으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의 대화 주제는 맛에서 사랑의 넘어간 거로군.




“격정적인 사랑이란, 나의 감각을 모두 열어버리는 거야.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은 발걸음 하나에도 무게가 없어. 발바닥에 붙은 족저근막에서 발목의 아킬레스 그리고 종아리에서 허벅지까지 감싸고 있는 비복근에 조차 무게가 젼혀 실리지 않아. 지상에 왼쪽 발바닥이 닿기도 전에 오른쪽 발바닥이 닿아 그 무게를 날려 버리는 거지. 사랑에 빠지면 그렇게 날아다니는 기분이라고.”

나는 채반을 들고 하늘을 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작은 마라탕 집에서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남자를 연기하는 내가 맘에 들었는지 M은 눈가와 입가에 동시에 주름이 지어지도록 소리 없이 웃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표정이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입가 주름을 일자로 펴고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흠...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격정적인 사랑이 끝나고 헤어지면, 나의 발자국 한걸음 한걸음은 다시 족쇄처럼 무거워지는 건가?

“아마도. 격정적인 사랑은 결국 격정적인 이별을 만들기 마련이니까”

우리는 푸짐하게 고른 채반의 야채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나는 지금 이 순간 M을 사랑한다고 느낀다. 그 감각은 짜릿하고 달콤하다가 맵게 쓰리다.

물론 사랑만을 느끼는 개별 기관이나 세포 따위는 별도로 우리 몸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의사들이 밝혀낸 바가 없으니까. 의사들은 사랑 따위에 신경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늘 바쁘다. 그들은 사랑을 느끼는 세포를 연구하느니 피가 철철 흐르는 외과적 상처를 봉합하는 방법을 하나 더 연구하는 것이 가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인간이 가장 피폐하고 나약한 때는 영원할 거라 믿었던 사랑을 잃었을 때가 아니던가.


나는 그동안 사랑을 나의 몸 어느 한 부분의 감각기관으로 느껴왔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사랑을 관장하는 내장 기관이 내 몸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마치 혀에는 매운맛을 느끼는 미각세포가 없다고 하지만, 대다수는 매운맛을 ‘느끼’듯이.


단언컨대, 나는 그녀를 이 순간에도 나의 신체 기관 어딘가를 통해 ‘사랑’한다고 느끼고 있다. 어쩌면 사랑을 느끼는 기관은 인류의 오랜 진화과정에서 퇴화됐을지도 모르겠다.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사랑을 느끼는 기관은 생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하등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정일 뿐이다. 사랑에 빠진 뇌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피해야 할 야수와 같은 공격성에 반하게 만드니, 가뜩이나 약한 생명체인 인간을 방어에 더 취약한 동물로 만들 뿐이다.


아마도 사랑을 관장하는 개별 기관은 대상이 없을 때는 우리 몸에 없거나 숨어있다가, 사랑의 상대가 나타나면 그때부터 조금씩 감각 세포를 만들어내고 근육과 조직을 만들어 우리 몸 어딘가에 자리 잡아 조금씩 커져가는 듯하다. 시도 때도 없이 상대를 생각나게 만드는 걸 보면 대뇌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 걸까? 아니지, 사랑에 빠지면 배가 고픈 것조차 잊게 만드니 소장과 대장 사이 어딘가에 자리할지도.


그러나

이토록 절절한 사랑의 감정도

그리고 사랑을 느끼는 기관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소멸되어 가겠지.

그녀의 일상에서 내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질 때

그녀에게 걸려온 부재중 전화에도 무심해질 때

그녀를 만나러 가는 그 모든 거리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질 때 즈음

그렇게 사랑은 통각이 되고 통증이 되어

나를 아프고 슬프고 허무하게 만들다가 그렇게 퇴화되겠지.


우리는 나란히 앉아 각자의 마라탕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중국당면이 불어버리기 전에 한 덩어리를 젓가락으로 휘휘 저어 후 소리를 내어 불고는 입에 넣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앉아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마라탕을 먹고 있는 M을 바라보았다. 사랑스러웠다. 그녀와의 이별을 잠시 상상한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조이듯 절여왔다. 선명한 감각이 어딘지 모를 감각기관을 타고 느껴졌다.

오늘따라 마라탕이 더 맵다. 격정적으로 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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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음악 : 허회경, 오 사랑아

https://youtu.be/U0LnjY2uY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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