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갓잇_고국에서 이국을 그리워하다

에세이

by mina

space_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갓잇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아랍어, 계절이 없는 나라, 소금에 찍어 먹는 과일 같은 것들.

외국에 나가면 보이는 이질적 경관, 문화, 음식, 언어는 나를 전혀 다른 삶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착각이 든다. 이를 통해 현실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나’를 잊게 한다는 점에서 특히 매력적이다.


성인이 되어 방문한 첫 배낭여행지는 그리스였는데, 하룻밤의 만 원짜리 게스트하우스조차 건축자재가 모조리 대리석인 것을 보고 경제적 위화감을 느꼈으며 (알고 보니 그 나라에서 대리석은 흔하고 저렴한 건축자재였다), 오며 가며 흔히 볼 수 있는 서양남자들은 모조리 영화 속에서 막 나온 것 핸섬했다. 풍경뿐이 아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연인들의 애정표현의 수위는 문화충격 수준이었는데, 그동안 동방의 예의지국에서 내가 듣고 보고 자란 예절과 도덕이라는 허울이 왠지 우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특정 국가에서는 절대 금기시되는 것들이, 바로 이웃 국가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본 경험은 나의 삶의 전체 가치관이 흔들리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주변 후배와 친구들에게 되도록 많은 나라를 여행할 것을 강권했다. 수많은 이질적인 풍경,


타국의 문화를 경험할수록 내가 절대 선이나 도덕이라고 생각했던 틀을 깨는 경험은 사고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에게 ‘이국적인 것’이란 단순히 ‘달라서’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다를 수 있다’는 ‘달라도 된다’라는 무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나의 시야에서는 문제라고 느껴지는 것들이 다른 각도에서는 전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알려주는 힌트 같다고나 할까.


사람은 모름지기 삼시 세 끼를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한 상식으로 알고 있던 내게 하루 네 끼를 먹는 스페인 사람들의 식문화는 낯설었지만 흥미로웠다.

가족에게 잘 차려진 아침식사를 제공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 있었던 내게 아침부터 화덕을 피워 집을 덥게 만들기보다 가족 전체가 집 앞 식당에서 잠옷을 입은 채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동남아의 식문화 역시 나에게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가족에게 손수 제공하는 정성스러운 아침식사에 대한 집착을 버렸다. 이처럼 ‘이국적인 풍경’이란 나에게는 여러 ‘가능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어떤 여행은 이질감이 아니라 동질감을 통해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일본으로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분명 이국의 땅이나, 그들은 내가 입 밖으로 한국말을 내뱉지 않는 이상, 한국인인 것을 몰랐다. 닮았지만 닮지 않은 나는 유유히 타국의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녔지만, 어떤 누구도 나를 이방인으로 경계하지 않는 그 묘한 자유로움이란! 여행자가 아닌 그들의 일상에 쓰윽하고 들어와 자연스럽고도 은밀하게 타국의 매력을 즐기는 기분! 이것은 마치 ‘윌리를 찾아라’ 책 속에서 가짜 윌리들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게 그림 한 구석 어딘가 숨어있는 진짜 윌리의 마음이랄까.


가끔은 한국을 떠나고 싶으면서, 이방인의 신분을 들키지 않은 채 은밀한 이국의 매력을 느끼고 싶은 모순된 마음. 어쩌면 이것은 조금 더 고차원적인 ‘이국’에 대한 욕망이 아닐까.




*서울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이국의 장소들을 소개한다.

압구정로데오역에서 내려 도산공원 근처 갓잇이라는 멕시코 식당에서 타코세트를 먹는다. 어설픈 선인장 장식들이 제법 멕시코 같다. 밥을 먹고 나오면 거리에는 이미 이국적인 옷차림의 청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끔은 이곳이 캘리포니아인지 헷갈릴 정도의 헐벗은 복장의 여인들도 보인다. 매우 이국적이다. 골목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뉴요커들이 커피를 따라줄 것만 같은 힙하고 시크한 인테리어의 카페들이 즐비하다. 커피를 즐기고 나서 이번에는 요즘 가장 핫한 ‘런던 베이글’ 베이커리를 들려본다. 런던 스타일의 인테리어와 유니언잭이 그럴싸하다. (단, 너무 핫해서 오후 3시면 이미 솔드아웃 된다는 점 유의!) 마지막으로 하바나 스타일의 칵테일 바에 들려 쿠바에서나 볼법한 풍경 사진들과 칵테일을 한잔 먹으면 오늘의 당일 이국여행코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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