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내향인의 주섬주섬 여행 줍기
컨디션이 좋은 날은 발걸음이 바닥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햄스트링과 엉덩이 근육을 느끼며 급할 것 없는 한 걸음을 옮긴다. 촉촉한 달팽이가 유주하듯 나아간다. 생각과 감정이 흙바닥에 녹아들고 나면, 나는 주야장천 걷는 일만 남은 유기물 조각이 된다.
숙소에 배낭을 두고 작은 짐만 챙겨서 허리에 두르고 산책을 나온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누군가 행복은 불행의 반대말이 아니라 불행이 사라진 평온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이 행복은 사람으로서의 불행을 벗고 어슬렁거리는 동물로서의 평온일 것이다.
나는 사고 싶은 것도 입고 싶은 것도 없는 동물이 된다. 땀이 말라 얇은 소금층이 형성되면 피부는 동물의 가죽처럼 한층 두꺼워진다. 기분 탓인지 태양에 덜 그을리는 것 같기도, 수분의 증발을 막아주는 것 같기도 하다. 밥 먹는 시간은 몸이 결정한다. 스마트폰을 들어 올릴 때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하면 전해질 음료를 마신다. 한 시간쯤부터는 골반의 불균형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기회가 되어 요가 학원이나 병원을 찾을 때마다 내 골반은 좌측이 우측보다 전방으로 틀어져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평소에는 못 느꼈던 작은 불균형이 걸음으로써 드러나기 시작한다.
몸은 그제야 자기 소리를 낸다. 나와 관련 없는 목표들과 뇌가 쓸데없이 빚어낸 노이즈들 탓에 몸의 소리는 자주 간과되었다. 몸은 재즈 콰르텟의 베이스처럼 자칫 놓치기 쉬운, 그러나 없으면 음악 전체가 틀어져 버릴만치 중요한 소리를 낸다. 드럼 소리와 색소폰, 피아노 선율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베이스 소리는 혼자만으로도 "둥, 둥기-둥", 꽉 찬다. 내 몸은 커다란 더블베이스가 나무의 떨림음을 내듯 이따금 삐거덕거린다.
너무 멋 부린 것 같아 착용을 주저하던 선글라스도 이곳 태양광 앞에선 자연스러운 필수품이 된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면 내 딴에는 다른 얼굴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을, 나도 모르는 얼굴을 하고 들어간다. 모자와 선글라스, 작은 가방만 지고 낯선 군중 속으로 숨어든다. 지루한 도롯가도, 느닷없이 나타난 쇼핑센터도, 시장도 꿈속 배경처럼 저항 없이 지나간다. 나는 마음 놓고 온 감각을 이용해 구경할 수 있다.
한 여행자 무리 속에 무임으로 승차하여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은 채 사방을 관찰한다. 내가 내야 하는 유일한 비용은 입가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뿐이다. 인사와 미소는 입장을 허락받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피부를 뚫으려 드는 자외선과 코 점막을 자극하는 매연을 요령껏 피하며 걷는다. 시시로 그늘을 찾고, DPF가 망가진 차가 내뿜는 거뭇한 재 덩어리 앞에서는 숨을 참는다. 전진과 그늘과 숨 참기가 반복되며 나름의 리듬이 만들어진다. 놓여있는 환경과 짐승으로서의 내가 상호작용한 결과로 생겨난 리듬이다. 살아남을 수 있다는, 해 볼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가림막 없이 걷는 행복감은 선팅을 한 자동차에서 즐기던 풍경을 관음으로 전락시킨다. 액셀러레이터가 없는 몸은 약하고 느리지만 무엇보다 자연스럽다. 언제든 당기기만 하면 쭉쭉 나아가는 스로틀은 뻣뻣해진 허벅지를 가져본 적 없다. 차라리 약하디 약한 맨몸으로 흔적 없이 걷는 쪽을 선택한다. 환경 앞에 정직한 짐승의 몸이 때로는 가장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