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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앙 Oct 21. 2023

10. 방콕 베이스

어느 내향인의 주섬주섬 여행 줍기


    방콕에서는 서울의 칵테일 한 잔 값으로 라이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가끔은 기분을 낼 겸 끼니도 때울 심산으로 라이브 클럽을 찾는다. 단연 4-5인조의 밴드 구성이 인기가 좋다. 주말 저녁의 피크 시간대는 주로 정식 구성의 밴드가 차지하고 있어 이때 클럽을 찾으면 제법 심취할 만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밴드가 사운드 체크를 하는 순간부터 전율이 감돌기 시작한다. 드러머는 베이스 드럼과 라이드 심벌을 조율한다. "쿵짝, 쿵, 촤라라락". 밴드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는 여섯 개의 기타 줄을 하나하나 다듬는다. 이쯤 됐다 싶으면 손이 가는 곡 중 아무거나 더듬어 연주해 본다. 음악이 시작되기 전에 약식으로 듣는 연주가 더 감미로울 때도 있다. 연주자는 곡의 느낌이 잘 사는 것 같으면 다음으로 마이크를 체크한다. "마이크 첵, 똑딱, 똑딱."  


    이제부터 나의 관심은 기타리스트 뒤에 숨은 베이시스트에게로 향한다. 베이스음이 갖는 뿌리의 성질 때문인지 베이시스트는 티 없이 스미는 흙냄새처럼 항상 기타리스트의 한 걸음 뒤에 숨어 있다. 그는 기타를 어깨에 멘 채로 들릴 듯 말 듯 한 저음을 체크한다. 

    "둥둥 두둥 두이잉-둥" 베이시스트의 입꼬리는 '두이잉' 벤딩되는 음을 따라 함께 움직인다. 고음은 발생 즉시 또렷한 음으로 청중을 돌파하고는 깔끔하게 사라진다. 한편 주파수가 낮은 저음은 베이스기타를 가슴팍에 붙인 연주자의 울림통을 먼저 진동시켜 음의 발산이 고음에 비해 더디다. 하지만 더 길고 그윽하게 남아 음악의 빈 곳을 지그시 채워준다. 베이시스트는 자신의 울림통이 진동하는 동안 표정으로 먼저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인지 밴드에서 표정이 가장 풍부한 포지션은 의외로 베이스인 경우가 많다.

    청중이 느끼기에 베이스음은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전해진다. 언제나 베이시스트의 표정이 음에 선행하고, 잠시 뒤에 들려오는 음의 시간차가 묘한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이로써 흑인 음악의 '레이 백'처럼 그루브한 리듬이 형성된다. 베이스음은 어느 장르에서 들어도 약간은 찐득하고 그루비하다.       


    곡이 진행하는 내내 베이스의 음색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베이스는 멜로디를 현란하게 리드하는 기타 소리와 드럼의 노골적인 충격파에 가려진다. 그러나 베이시스트의 표정만큼은 음악을 온몸으로 즈려 짜내는 듯하다. 저음은 까랑까랑한 음으로 표면에 드러나기보다, 새벽의 AM 주파수 라디오처럼 직감적으로 스민다. 아마도 베이시스트는 자신이 내는 음률을 귀보다는 몸으로 듣고 있을 터이다. 청중의 입장에서는 베이시스트의 표정이 또 하나의 퍼포먼스가 된다.

    베이스 연주를 듣기 위해서는 오히려 눈을 감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눈을 감고 드럼 소리보다 조금 더 길게 지속되는 저음을 듣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음으로 꽉 찬 듯, 혹은 빈 듯한 공간이 느껴진다. 바로 그곳이 베이스가 빛을 발하는 공간이다. 베이스의 존재를 귀로 확인하고 나면 음악이 조금 더 재밌게 들린다. 멜로디가 쉬어가는 공간에도 꾸준히 진동을 공급하는 베이스, 그리고 언제나 반박자 앞서는 베이시스트의 표정. 잠시나마 무아지경에 빠진다.


    밴드의 연주가 서너 곡쯤 지나면 전면에 드러난 멜로디보다는 밴드원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방식에 더 눈길이 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한 음 한 음 뿌리음을 꾹 짚어주는 베이스음이 자장가처럼 들려온다. 들릴 듯 말 듯 곡을 뒤쫓는 그 소리가 라이브홀을 감질나는 곳으로 만든다.  


    저음은 가슴을 든든하게 채운다. 라이브홀의 음악은 귀가 아닌 청자의 가슴으로 듣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가슴'이 공기로 가득한 '흉곽의 울림통'을 의미하는 것 같다. 홀에 드럼통 여러 개를 앉혀두고 연주한다고 가정했을 때, 드럼통 역시 사람들처럼 특정 음역대에서 음악에 공명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둔탁한 울림통은 고음보다 저음에서 공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나는 음악을 귀로 한 번 듣고, 눈으로 두 번 듣고, 울림통으로써 세 번 듣는 셈이다. 저음의 드럼과 베이스가 모든 장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베이스는 일품요리의 가니시로 사용된 삼삼한 오이 조각처럼, 스파클링 없는 얼음물처럼 담백하다. 자칫 끈적하고 느끼해질 수 있는 공간을 한 풀 진정시키며, 청중이 다음 곡을 계속 기대하도록 밴드 사운드의 완급을 조절하는 것도 베이스이다.     

    음악을 앞에 두고 맥주를 마시면 적은 양으로도 쉽게 취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섞을 때 한 번씩 흔들어 주는 것처럼, 진동이 몸을 흔들어 알콜의 빠른 분배를 도와주는 것 같다. 어쨌든 외로움을 잊은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어느새 영화 '위플래쉬'의 마지막 장면처럼 드럼이 "쾅!" 하고 울린다. 나는 몽롱했던 감정이 깔끔하게 소화된 느낌을 가지고 홀을 나선다. '오늘 하루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라는 마음이 방해받지 않도록 되도록 무각성 상태를 유지하며 침대까지 안착한다. 몽몽한 베이스가 삶을 따뜻하게 휘감는 꿈을 꾼다. 버스를 탈 때도 걸을 때도 풍경을 볼 때도 어디든 배경음악처럼 베이스가 감도는 상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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