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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앙 Oct 21. 2023

8. 빵(O pão)

어느 내향인의 주섬주섬 여행 줍기


    주앙 도나뚜(João Donato)의 노래 <cafe com pão(커피와 빵)>은 평범한 아침을 찬양한다. 그의 노랫말에서 커피와 빵은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운 아침의 기적을 상징한다.


coisas tão simples de nós dois

(우리 둘을 위한 그런 간단한 것들)

pão com manteiga no café

(커피와 버터를 바른 빵)


...

somos assim tão naturais 

como o amor dos animais e

(동물의 사랑처럼 자연스러운)


coisas que a gente nem deu nome

(우리가 이름조차 짓지 않은 것들)


e de manhã aquela fome

o nosso cheiro nos lençóis nós

(아침의 배고픔, 시트에서 묻어나는 향기 같은 것)


    매일 무의식 중에 반복되니만큼 소중한 것들이지만, 우리는 그 순간에 특별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고 흘려보낸다. 커피와 빵을 일상의 상징으로 사용한 이 노래처럼 나의 일상에도 언제나 커피와 빵이 함께한다. 


    특히 여행 중에는 유달리 빵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는 것 같다. 여행자에게는 시간과 장소, 기분마저 고정된 것 없이 모든 게 변화무쌍하다. 지역에 따라 식당 메뉴도 조금씩 바뀌게 마련이다. 이렇게 삶의 배경이 끊임없이 바뀌는 상황을 원해 왔었지만, 가끔은 모든 게 변화하는 상황이 부담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 하나만큼은 변치 않았으면 좋겠는 바로 그때, 빵을 찾게 된다.

    고양이가 어릴 때부터 맛본 한 가지 식감에 천착하는 것처럼, 나도 밀가루가 주는 폭신함으로부터 안정감을 얻는다. 몸과 마음이 지칠 때에도 빵은 늘 같은 맛으로 포만감을 준다. 핫한 레스토랑이든, 침침한 게스트하우스 구석이든, 골똘히 홀로 앉은 테이블이든 변함없이 빵은 든든한 열량원이 되어준다. 허름한 상점의 먼지 쌓인 포장지 안에 든 빵도 상관없다. 어떤 빵이든 가방에 넣어두면 간혹 길을 잃어 두어 끼 굶게 될지라도 위험한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에서 빵은 카페의 아늑한 조명 속 화려한 디저트로 마케팅되지만, 여행 중의 빵은 아무래도 크림 없이 퍽퍽한 것이 보관이 쉽고 상하지 않아 유용하다. 종일 걷고 나면 모든 빵이 화려해 보인다. 그러니 여행 중에는 굳이 화려한 빵을 찾아 나설 필요가 없다. '반지 원정대의 프로도'가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모르도르로 향하는 동안에도 그의 눅눅한 가방에는 풀잎에 싼 렘바스 빵이 있었다. 한눈에도 텁텁할 것만 같은 그 빵 한 조각은 소설 속 인물들이 하루를 지탱할 수 있도록 요긴한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브런치 맛집이라는 곳도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다소 성급한 결론을 내린 이후, 나의 아침은 단순한 구성을 유지하고 있다. 블랙커피 분말과 따뜻한 물, 그리고 빵이다. 저렴하고 담백한 빵은 검색과 리뷰에 낭비되던 에너지를 오로지 아침 명상에 집중하게 해주었다. 먹는 것보다 때우는 것에 가깝던 빵이, 어머니에게 빵을 먹었다 말하면 왜 제대로 먹지 않냐는 핀잔으로 돌아오던 빵이, 이제는 편히 공복을 달래주는 고마운 것이 되었다.  


    태국 변두리 지역에는 조명 없는 빵집이 많다. 정육점에 붉은 조명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그간 빵집이라 하면 긴 파장대의 따뜻한 조명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유동인구가 적은 지방의 특성 때문인지 평범한 가정집에서나 볼 법한 백색 형광등을 켜둔 빵집이 많다. 심지어는 조도가 너무 낮아 외부에서 실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운 곳도 있다.   

    그러나 빵의 맛은 조명의 화려함 여부와 무관했다. 오히려 소박한 외양의 빵집은 "그냥 빵이야, 먹어봐."라고 말하는 듯하여 부담 없이 드나들기에 좋다. 당일 구운 빵을 과자나 껌 등의 공산품처럼 툭 내놓은 그 무심함에 끌린다.


    빵은 나에게 그렇듯 일반적으로도 생존과 일상을 상징한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외침에서 빵은 만민의 평등을 상징했고, 성경 속 빵은 생명을 빗댄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곳 태국의 누군가에게는 카우만까이(스팀닭고기덮밥)가 빵을 대신할지도 모를 일이다.

    카우만까이를 주문하면 타원형 그릇에 담긴 단품 요리가 나온다. 닭기름을 넣어 지은 밥 위에 닭고기 조각 몇 개가 얹힌다. 경도가 낮아 쉽게 휘어지는 스푼과 포크를 양손에 쥔다. 짭조름한 피쉬소스를 섞어가며 흩어지는 밥알들을 스푼 위에 그러모은다. 그 위에 닭고기 조각을 얹어 한 입에 넣기 좋은 크기로 만든 다음, 입을 벌려 '와구' 털어 넣는다. 그렇게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식사가 완성된다. 


    많은 태국인에게는 닭고기덮밥이 곧 빵인 셈이다. 둘은 무심한 듯 담백한 맛을 낸다. 노상 좌판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무심하고, 언제나 든든하다는 점에서 담백하다. 간편하지만 정성스럽고, 대접받는 이를 차별하지도 그럴 이유도 없는 메뉴이다. 아침밥으로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평범한 삶을 지탱하는 성스러운 뿌리이다. 나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빵은 기적의 음식이다.

     "이불의 향기(cheiro nos lençóis)"는 평범한 아침이 가장 큰 기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아침을 살찌우는 빵과 커피는 평등한 생명과도 같은 시간이다. '평범한 기적'을 태국식으로 의역하면 '아침의 카우만까이' 정도가 될까.


   "까뻬꽁빠옹(café com pão), 카우만까이, 까뻬꽁빠옹, 카우만까이"


    나는 한동안 남의 나라 된소리를 아이처럼 번갈아 되뇌면서 걷는다. 기분만은 차별 없는 세상을 걷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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