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주스가 흐르는 강
오늘은 동생이 뱃속에 아픈 나비가 날아다닌다며 떼를 쓰는 바람에 혼자서 집을 나섰어요.
하늘에서 내리는 투명한 빗방울들이 작은 종소리처럼 울리고, 길가에는 반짝이는 물웅덩이들이 마법의 거울처럼 반짝였답니다. 등교하는 친구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우산을 든 나 혼자만의 발자국 소리가 음악처럼 들렸어요.
첨벙! 마법의 웅덩이를 발견할 때마다 조심스레 발을 담가보았어요. 까만 흙탕물이 샌들과 발가락을 간지럽혔지만, 그게 또 신기했답니다. 엄마가 알면 걱정하실 테지만, 오늘만큼은 이 재미있는 놀이를 멈출 수가 없었어요.
구름나라에서 보내준 빗방울 향기를 맡으며, 평소와는 다른 신비로운 등굣길을 즐기고 있었답니다.
연두빛 사과들이 마치 작은 종들처럼 달랑달랑 매달린 과수원을 지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어렴풋이 보이는 작은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요. 비에 젖은 날개를 힘겹게 펄럭이며, 마치 다음 순간 땅으로 떨어질 것만 같이 아슬아슬하게 공중을 맴도는 나비 한 마리를 발견했답니다.
작은 친구가 비에 흠뻑 젖을까 걱정된 소년은 살금살금 다가갔어요. 하지만 수줍은 나비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자꾸만 멀어져 갔지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 같아 소년의 마음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답니다.
그래서 소년은 특별한 계획을 세웠어요. 살금살금 다가가 나비를 잡아 가방 속에 넣어두었다가, 수업이 끝나면 다시 과수원으로 데려다 주기로 했지요.
마침내 나비는 덜 익은 사과 위에서 날개를 접고 앉아 있었어요. 날개가 너무 무거웠나 봐요.
"어? 나비가 아닌 것 같아……"
소년이 자세히 보니 정말 나비가 아니었어요. 작고 아름다운 생명체가 비에 젖은 채 나비처럼 웅크리고 있었지요.
투명한 날개에서는 무지개빛이 반짝였고, 머리카락은 은빛 이슬방울처럼 빛났어요. 연두빛 사과잎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은 요정은 비에 흠뻑 젖어 덜덜 떨고 있었답니다.
얼굴은 작은 꽃봉오리처럼 앙증맞았고, 눈동자는 아침 이슬처럼 맑고 영롱했어요. 손가락과 발가락은 갓 피어난 민들레 씨앗처럼 가볍고 사뿐했지요.
반짝이는 가루를 뿌리며 조심스레 날개를 털어내는 모습은 마치 우아한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그래요, 바로 요정이었답니다!
동화책에서만 보았던 요정을 실제로 만난 소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지요.
"안녕! 네 이름이 시몬이지?" 소년은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어요.
요정을 처음 만난 것도 신기한데, 사람의 말까지 할 줄 아는 게 더욱 놀라웠답니다.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그리고, 사람 말도 할 수 있어?"
"응. 친구들이 네 이름 부르는 걸 듣고 알았어. 나는 나뭇잎 사이에 숨어서 널 오랫동안 지켜봤거든. 네가 제일 좋았어. 특히 웃는 모습이 정말 귀여워."
"너 들키면 어쩌려고 그랬어? 누가 잡아가면 어떡해?"
"히히, 엄마도 내가 여기 있는 걸 몰라. 내 날개가 나뭇잎처럼 보이니까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었거든. 네가 가끔 사과 따러 올 때면 깜짝 놀라기도 했어. 나무 뒤에서 너무 신나서 뛰어다니다가......."
그리고 우리 요정들은 특별해서 아이들만 우리를 볼 수 있어. 그것도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한 아이들만. 그래서 네가 나를 볼 수 있는 거야."
"그런데 오늘은 나한테 들켰잖아!" 소년이 장난스럽게 화난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한 번도 들키지 않았는데, 오늘은 비가 와서 너무 신나게 돌아다니다가 그만…… 나도 너처럼 비를 좋아하거든. 그리고 내 생각처럼 네가 마음이 따뜻하고 순수한 아이라는 걸 알게 돼서 기뻐. 다만, 나를 만난 건 꼭 비밀로 해줘야 해. 잠시만 내 곁에 있어줄래? 날개가 젖어서 날 수가 없어. 아, 맞다! 학교 가야 하지?"
요정은 재잘재잘 말이 많은 친구였어요. 소년은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단호하게 말했어요.
"사실 오늘은 안 가도 돼. 동생이 학교에 안 가서 비밀로 할 수 있거든."
"잠깐, 네 이름은 뭐야?" 심온이 물었어요.
"내 이름은......" 요정이 웃음을 머금고 말했어요. "사실 아직 이야기하면 안 되는데......"
심온은 궁금한 눈빛으로 요정을 바라보았어요.
"요정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름을 알려주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거든. 하지만......"
요정이 잠시 고민하다가 속삭이듯 말했어요.
"너는 특별해 보여. 비밀을 잘 지킬 것 같아.” 요정은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어요.
"나는 '초롱이'야. 사과잎처럼 초록빛 날개를 가졌고, 밤에는 반딧불이처럼 반짝인단다. 엄마 말씀으로는 내가 태어날 때 달빛이 내 날개를 비춰서 이렇게 이름을 지으셨대."
초롱이는 말하면서 날개를 살짝 펼쳐 보였어요. 마치 사과나무 잎사귀를 정성스레 접어 만든 것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웠답니다.
"초롱이라는 이름도 예쁘지만, '사과'라는 이름도 잘 어울렸을 것 같아." 심온이 말했어요.
"그래? 엄마가 처음에는 '홍시'라고 부르려고 하셨대. 빨갛게 익은 사과처럼 내 뺨이 발그레해서래. 사과 요정인데 홍시라니, 우습지 않니?" 초롱이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어요.
심온은 초롱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소를 지었어요. 사과나무 아래서 만난 요정의 이름이 이토록 예쁜 뜻을 가지고 있다니 신기했답니다.
"그런데,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심온이 물어보았어요.
"나는 이 과수원을 지키는 요정이야. 우리 가족은 사과나무가 튼튼하게 자라도록 돕고, 벌레들이 사과를 먹지 못하게 지켜주는 일을 한단다. 밤에는 달빛을 모아서 사과나무에게 영양을 주기도 해. 우리 가족은 교대로 일하는데, 엄마는 점심에, 아빠는 저녁에 이곳을 지키고, 나는 아침 당번이야.”
"비가 올 때도 일해야 하는 거야?" 심온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물었어요.
"엄마는 사과가 자라고 익으려면 햇빛이 필요하다며 비 오는 날을 싫어하시지만, 난 비 오는 날이 더 좋아. 빗소리가 정말 좋거든. 그런데 오늘은 너무 신나서 돌아다니다가 날개가 흠뻑 젖어버렸어." 초롱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울상이 되었어요.
"그럼 너희 덕분에 사과가 이렇게 예쁘게 자라는 거구나!"
"딩동댕!" 초롱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참! 넌 이름이 왜 시몬이야?"
"응? 엄마가 지어준 이름인데…… '심'은 마음이라는 뜻이고, '온'은 따뜻하다는 뜻이야.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되라고 지으셨대. 난 내 이름이 참 마음에 들어."
"아~ 심! 온! 이었구나. 너도 이름이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