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만에 베이스를 꺼냈다.
창고 한편에서 썩어가던, 차마 바라볼 수 없었던 그것을. 줄은 녹슬었고 긱백은 곰팡이 투성이었다. 먼지를 털어내며 잠시 멈칫했다. 이 악기를 마지막으로 만진 날이 언제였을까.
스물여덟 살의 나는 이 와인색 베이스를 손에 들고 무엇을 꿈꿨을까.
회사 동기들과 만든 밴드는 내 삶의 큰 자부심이었다. 주말이면 신촌 어느 지하 합주실에 모여 연습했다. 기타, 드럼, 보컬, 그리고 베이스를 맡은 나. 서툴렀지만 진지했다. 합주가 끝나면 맥주를 나눠 마시며 다음 곡을 정했다. 그 시간이 주는 해방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밴드는 일상의 무게를 견디게 해주는 버팀목이었다. 월요일 아침이 두렵지 않았던 건 주말 연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 스트레스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베이스 줄을 튕기는 순간만큼은 사라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하나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결혼, 이직, 해외 발령. 현실은 우리를 각자의 길로 흩어놓았다. 마지막 합주가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새 밴드는 과거가 되었고, 베이스는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 자부심을 잊고 살았다. 이십 년 동안.
열네 살의 통기타는 어디로 갔고, 열여덟 살의 까만 베이스기타는 누구의 손으로 건너갔을까. 기억이 없다. 이사를 거듭하며 어느 순간 사라졌을 것이다. 돈이 필요해 헐값에 팔았을지도. 어쩌면 친구에게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했을 수도. 확실한 건, 그것들을 잃어버린 순간조차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무심했고, 그만큼 쉽게 포기했다.
그래도 하나가 남았다.
낙원상가로 향했다. 좁은 계단을 오르며 이십 년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첫 월급의 절반을 바쳤던 그날, 설레는 마음으로 이 베이스를 집으로 가져왔던 그 순간. 상점 주인은 내 베이스를 별것 아니라는 듯 살폈다. "이 정도야 금방 손봐드리죠." 몇 시간 뒤, 와인색 베이스가 다시 악기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와 작고 낡은 앰프를 꺼냈다. 먼지를 닦고 베이스를 연결했다. 새 줄을 갈고 1번부터 4번까지 한 줄씩 튕겼다. 낮고 둔탁한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다섯 개의 노브와 두 개의 토글—이것들이 무슨 역할을 했는지 더듬거리며 기억을 되살렸다. 톤을 조절하고, 볼륨을 올렸다. 손끝이 천천히 기억해 냈다.
개방현을 튕기고 앱을 켜서 조율했다. E, A, D, G. 각 프렛의 음정이 손끝으로 돌아왔다. 3프렛을 누르면 G, 5프렛을 누르면 A.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만큼, 손가락은 자기 자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십 년 전의 손가락 움직임은 완전히 사라졌다. 빠른 프레이징도, 매끄러운 이동도 이제는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이상했다. 그때의 낮은 울림보다 더 벅찬 무언가가 일렁였다. 이십 대의 나는 기교를 원했다. 사십 대의 나는 울림을 듣고 있었다. 더 깊고, 더 무겁고, 더 진실한 소리를.
매일 퇴근 후 베이스를 집어든다. 출근 전 아침 루틴처럼, 퇴근 후 저녁 루틴이 되었다. 앰프를 켜고, 줄을 튕기고, 운지를 연습한다. 처음엔 15분도 버티기 힘들었던 손가락이 이제는 한 시간을 견딘다. 세 달이면 감각을 되찾을 것 같다. 여섯 달이면 100bpm 16비트도 자유로워질 것 같다.
주말 동안 슬랩을 연습했다. 엄지로 줄을 때리고, 검지로 줄을 당기는 그 기법. 예전엔 자연스럽게 해냈던 동작이 이제는 새끼손가락만 따로 놀며 버징을 일으킨다. 웃음이 났다. 좌절보다 재미가 먼저였다. 다시 배우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다.
다시 꿈을 꾼다. 아니, 꿈이라기엔 거창한, 그저 상상. 일 년 뒤 어느 가을, 소박한 밴드와 무대에 서 있는 내 모습을. 크지 않은 공연장, 많지 않은 관객—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규모가 아니라 마음이니까. 기타리스트가 리프를 시작하면 나는 루트음을 받쳐준다. 드러머의 킥에 맞춰 그루브를 만든다. 보컬의 목소리 아래 낮은 울림을 더한다.
한 번도 좋아하는 것을 그대로 해본 적 없던 나는 다시 자유를 꿈꾼다. 글쓰기에 이어, 진정 좋아하던 것을 만지고 있다. 젊은 날엔 현실이 두려워 악기를 포기했다. 생계와 안정이 우선이었다. 그렇게 이십 년을 살았다. 하지만 쉰에 가까워진 지금 깨달았다—좋아하는 것을 하지 않는 삶도 충분히 두렵다는 것을.
베이스는 다시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계속하는 것이다. 매일 줄을 튕기고, 음을 찾고, 리듬을 새기는 것. 이십 년 만에 되찾은 이 울림이 앞으로의 이십 년을 채워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