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 역사 공부하는 거요! 아 아니 댐 만드는 거요!”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면서 역사와 필연의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현재의 수수께끼 같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과거를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이해하는 외교는 정말 냉철하고 정이 없다. 내가 봐온 외교라는 아이는 철저히 자국의 손익을 따져서 득이 되면 어제의 원수와 손을 잡고, 독이 되면 형제의 의를 맹세했더라도 피도 눈물도 없이 끊어내는 무서운 아이다. 가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소름 끼치고 놀라기도 했는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전혀 놀랄 게 아니다.
이미 과거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과거의 수많은 선례들이 오늘날의 문제들에 대해 예고를 해주었고 때로는 가야 하는 방향성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외교는 이처럼 차갑고 피도 눈물도 없는 부분이 있지만 결국 외교도 사람이 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과 가치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사람의 인격이 들어가면서 발생할 수 있는 불규칙과 예측 불가한 부분을 해결해주는 것도 역사다. 물론 100% 정확도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국가와 인물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그 문화만의 특이점이 있고, 이와 연관된 독특한 국민성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이렇게 생긴 역사적 감수성으로 해당 문제를 바라보면 이성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이해가 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마치 모든 국제 사회의 정치 경제 외교 부분을 통달한 것처럼 들릴지 모르나, 그건 절대 아니다. 아직 나의 지식의 폭은 매우 얕고 좁아 누군가 내가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을까 긴장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역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타국가의 역사에 대해서는 아직 해야 할 공부 량이 정말 많다. 그러나 한국사람으로서 특히 한국을 대표한다는 사람으로서 적어도 우리나라의 현상만큼은 정확히 맥을 집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계속해서 한국사를 팠던 것 같다.
가볍게 나의 취미 계발로 시작한 글이 어느덧 사명감을 운운하고 있다.
이렇게 돌아 돌아 내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나에게 역사는 필연이었다.
그간 제대로 시작해보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어서 하지 못한 역사 공부에 제대로 시간을 쏟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한국사에 대한 지식이 내 기억 저장소 안에서 조각조각 어질러져 있었는데 지난 3개월 간 조각들의 위치를 바로잡아 주고 서로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한국사라는 작품을 목표로 열심히 퀼트를 하는 느낌이다.
지난 6년간 학부와 석사를 하면서 내가 한국사를 접하는 방식이 작은 마을 여기저기에 샘물을 파는 작업이었다면 이제는 한국사의 댐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마르지 않고 튼튼한 한국사의 댐.
한국사의 댐을 건설할 장소는 이곳 이도리의 브런치다.
무슨 주제부터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시작할지 수차례 고민을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향이나 계획은 없다.
이렇게 아무것도 모를 때는 그냥 내가 꼴리는 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 그래서 앞으로 이 메거진에는 그동안 내가 알고 싶었지만 미처 시간이 없거나 게을러서 제대로 파헤쳐보지 못한 역사 이야기 위주로 풀어나가려고 한다. 이렇게 하나 둘 쓰다 보면 방향이 잡히길 바라면서…
역사의 샘물이 댐이 되는 날까지 나는 앞으로 취미활동을 열심히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