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것이라는 주제를 떠올리니 생각났던 구절이다. 사라진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을 포함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단, 한 가지만이라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진심이라는 것이 떠올랐고, 일상이라는 것도 떠올랐다. 진심이 변하지 않는 이상에 대해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그것도 그것 나름 불행할 것 같다. 일순간 피어나는 감정도 진심인데 그것조차 허용하면 안 될 것 같은 세상. ‘조지오웰’의 ‘1984’ 속 세상처럼 모든 것을 감시당하며 사는 기분일 것 같다. 매사 조심해야겠지.
다음 생각이 난 건 일상인데 일상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아마도 요즘 내가 살만하기 때문일 것이다. 10대, 20대에는 항상 힘들었던 기억뿐이었는데 30대는 정말 무탈하게 보내고 있다.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이 쓴 책을 읽을 시간이 있고, 내가 궁금해하는 향긋한 와인을 가끔 마실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고, 사람들과 모여서 글을 써보고 싶었던 소망을 쉽게 이룰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가족들, 친구들도 큰 어려움이 없다. 다시 생각해도 난 정말 복에 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이 일상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언젠간 변한다는 사실과 직면한다. 그때 난 떠올렸다.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는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흥해읍 작은 동네 문방구에서 봉투에 든 100원짜리 종이딱지를 사고 봉투를 후 불어 또뽑기 찬스 쪽지가 있는지 설레하며 확인하던 시절. 그 딱지를 접어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에 표창을 날리듯이 던져 납작하게 만들겠다고 애썼던 소박하고 재미난 기억이 있다.
우리 집은 네 가족이 살기엔 조금 작은 18평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불편함도 걱정도 없었다. 그 당시 가장 큰 걱정이라곤 나고야에서 우리 동네까지 빨간 마스크가 찾아오진 않을까 하는 정도였다. 키가 4m라던 빨간 마스크는 어떻게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 올까 하는 일말의 의심은 없던 나이였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기억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런 기억들이 점점 내 기억에서 사라져 간다. 그 종이 딱지가 정말 100원이었을까? 50원이었을 수도 있다. 모를 일이다. 아예 잊힌 기억도 있다. 여름방학 동안 가족들끼리 파주의 어느 계곡에서 텐트를 치고 이주일 정도 캠핑했던 적이 있다. 말이 캠핑이지 그 시절 캠핑은 노숙과 별다르지 않았다. 그때의 기억이 굉장히 행복했던 거 같은데 지금 내 머릿속에는 그 행복이 유화 형식으로 그린 풍경화처럼 흐릿하게 그려져 있다. 모네의 ‘생타드레스의 정원’처럼 배경은 알아보겠는데 파라솔 밑 젊었던 엄마와 아빠의 표정이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리 가까이서 감상하려 해도 보이지가 않는다. 이런 점이 참 아쉬울 뿐이다. 내 기억력은 점점 빨리 퇴화할 것이고 그에 따라 흘러가는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지금의 행복한 일상도 언젠가 추억이 될 것이고 그 추억은 KTX에서 바라보는 창가 풍경처럼 점점 빠르고 흐릿하게 지워진다고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진다.
하지만 기억력이 완전하지 않는 것에 대한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도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왔다. 흥해읍 남산 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여섯 동짜리 4층 빌라에 살았는데 그 빌라의 계단은 유독 깨끗했다. 시멘트 색깔에 점박이 무늬가 있는 옛날식 계단. 그 계단의 끝엔 금색 금속으로 된 미끄럼방지 마감처리가 돼 있었다. 항상 반짝반짝 광이 날 정도로 깨끗했던 금색의 금속. 이유는 누군가 매일 정성스럽게 닦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바로 우리 빌라 계단청소를 책임지고 있는 청소부 할머니였다. 당시의 할머니를 지금 본다면 할머니가 아니라 아줌마라고 불렀을 나이였는데 그분은 정말 성실했다. 붙임성도 좋아 목이 마르면 똑똑하고 집주인을 불러 물을 얻어 마시기도 하고 차를 마시고 가는 일도 잦았다. 우리 집도 자주 방문했었는데 엄마와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다. 딸이 있었고 대학생이라는 것도 옆에서 듣고 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사건은 초등학교 3학년 소풍날이었다. 버스에서 과자를 까먹으며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몰랐던 사실을 한 가지 들었다.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 빌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신기하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청소하시는 할머니가 너희 집에도 자주 놀러 오냐고 물었던 나였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그 할머니 어제 죽었어”
그것도 우리 빌라 옥상에서 목을 매달고 죽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듣게 된 사건의 소문은 이러했다. 할머니의 딸은 대학생이 아니라 직업이 없었다. 그리고 사치가 굉장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할머니의 벌이는 그 시절 이율을 따라가지 못했고 문을 똑똑 두드리며 상당 수의 빌라 사람들에게 거액을 빌리고 죽었다는 것이다. 왜 할머니는 하필 우리 빌라 옥상에서 죽음을 선택했을까. 당신 나름의 사죄방식이었을까.
어릴 적 들은 그 이야기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한동안은 어두운 밤에 혼자서 계단을 올라가지 못했다. 새로 근무하게 된 할머니는 그리 성실하지 않았고 반짝거리던 금색의 금속 마감재가 점점 빛을 잃어갈 때쯤 나는 혼자서도 계단을 올라갈 수 있게 됐다. 기억이란 시간과 만나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에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