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의 입술엔 립스틱보단 틴트를 바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내 앞에 누워있는 31세 김여진 씨의 입술은 썩은 고목처럼 퍽퍽하게 말라있다. 며칠 전에 봤을 땐 화장을 하지 않은 입술에도 생기가 가득했었는데. 그리고 분명히 그녀의 첫인상에서 입모양은 역아치 모양으로 기분 좋은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완만한 아치모양으로 굳어있다. 이것은 내가 입을 강제로 다물게 한 것이다. 내가 처음 봤을 때 그녀의 입은 벌어져 있었다. 내가 강제로 다물게 할 수 있다는 건 그녀는 적어도 사후경직이 풀리기 시작하는 사망 24시간이 지나고 발견이 됐다는 뜻이다.
틴트를 바르기 전 톤업부터 해야겠다. 아니, 톤 다운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은 황화수소가스 중독으로 죽은 사람들이다. 종이공장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온 적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피부가 갈색으로 변하기에 색조 화장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김여진 씨는 목부분에 초커처럼 생긴 멍만 제외하면 정말 깔끔하게 들어왔다. 21호 파운데이션을 꺼내 내 손등에 살짝 짜준다. 그리고 깨끗하게 세척한 브러시로 내 손등을 간지럽히고 여진 씨의 볼 안쪽부터 바깥 방향으로 붓질해 준다. 하루 평균 두 명 정도의 메이크업을 해주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왜냐면 구면인 사람에게 붓을 두드리는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기분은 낯설지만 피부는 여느 죽은 사람들과 똑같이 탄력이 없다. 빈 운동장에 버려진 바람 빠진 축구공 같은 느낌이다. 죽는다는 것과 빈 운동장의 축구공의 공통점이 있구나. 여럿이서 살아가다 혼자 간다는 쓸쓸한 점이.
며칠 전 그녀를 보았을 때 확실히 우울해 보이긴 했다. 이건 특수한 상황에서 기민한 편으로 변하는 나만이 느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어렴풋이 그녀의 죽음을 예상했었다. 처음 만난 여진 씨와 1시간 후의 여진 씨의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일반적인 사람보다 밝았던 모습은 점점 희미해지더니 헤어질 때의 모습은 누구보다 우울해 보였다. 또 한 시간 뒤엔 다시 즐거워졌으려나. 여진 씨를 만나고 30분쯤 지났을 때 그녀의 팔오금을 보니 급격하게 살이 오른 듯이 살이 터져 있었다. 나머지 30분의 나의 관찰은 확증편향으로 이끌렸고 슬쩍 보인 그녀 가방 안의 하얀색 원통 플라스틱 병이 우울증 약이거나 수면제라고 확신하게 만들었다. 이 여자 곧 죽을 수도 있겠구나. 그것도 쓸쓸하게 혼자서.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으니 예상보다 일찍 죽었다. 아니 그보다 놀라운 것은 내가 지금 죽은 그녀에게 화장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상 참 영안실만큼 좁다. 지인과의 약속에 잠깐 따라 나온 그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왜 살인을 하셨나요?
-……
-스스로를 죽이고 사형을 선고받으셨네요.
-……
죽은 사람에게 하는 농담은 장점만 있다. 실패할 확률이 없단 말이지. 산 사람은 입이 있고, 죽은 사람은 귀가 없다던가.
지금은 처음 만남 10분 간의 들뜬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한 시간 뒤의 축 쳐진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 상태는 평온한 상태라 불러야 할까, 우울한 상태라 불러야 할까. 뭐가 됐건 나는 여진 씨를 화사한 모습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눈두덩이에 아이섀도를 조심스럽게 바른다. 눈을 감고만 있는 사람에게 이 부분이 가장 곤란한 메이크업이다. 눈을 떠야 이게 참 자연스러운데 감고만 있으면 굉장히 연하게 발라야 하기 때문에 두부 먹다 이 빠질 걸 걱정하는 사람처럼 아주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섬세하게 붓질을 하던 와중 난 소리를 질렀다.
-아이씨
어디선가 꼽등이가 점프해 내 손등 위로 앉은 것이다. 어찌나 가슴이 철렁거리던지 하마터면 아이섀도를 여진 씨의 눈두덩이에 푹 찍어 바를 뻔했다. 습한 공간에선 이 꼽등이들을 조심해야 한다. 내가 싫어하는 황화수소가스 중독으로 죽은 시체처럼 어찌나 갈색이고 굽은 등이 혐오스럽게 생겼는지 죽이기도 무서울 정도로 크다. 뿌직 거리는 소리가 상상만으로도 소름 끼쳐서 어떻게 죽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철렁거려 집중이 될지 모르겠지만 얼른 화장을 끝내고 집으로 가야 한다. 내일도 아침 일찍부터 화장을 해야 하니. 한 여름 밀폐된 공간에서 마주치는 꼽등이만큼 무서운 건 뱀뿐이다. 화장에 집중을 한 상태로 뱀을 만난다면 화장을 받고 있는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 오싹한 생각을 하니 조금 추워지는 기분이 든다. 아직 10월인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