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비현실화

9.나는 왜 아픈 몸으로 떠났을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나의 첫 비행

by 비현

정말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나는 해외를 단 세 번밖에 다녀오지 않았다.


그중 처음,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사실은…

거의 자기고백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비행기를 신발 벗고

타야 하는 줄 알았던 사람이었다.


말이 안 되지?

근데, 진짜 그랬어.


그만큼 나와 ‘비행기’는 아무 관련 없는 단어였고,

여행은 늘,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아프기 직전,
이상하게도 일본이 너무 가고 싶어졌다.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했고
언젠가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걸 진짜 실행에 옮길 만큼
내가 용감한 사람이었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
어느 날 현실이 되었다.


몸은 안 좋았고,
병원과 약국이 일상이던 때였는데
나는 갑자기 부산까지 내려가,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그것만으로도,
그때의 나는 정말 대단했다.


목적지는 오사카.


야매 일본어와 어설픈 영어,
느린 와이파이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낯선 도시를 걸었다.


찾아본 계획은 대부분 까먹었고
그 자리에 가서 또 다시 검색하고
길을 잃기도 하고,
그냥 보이는 대로 따라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지?


계획이 틀어졌는데도
이상하리만치 잘 다녔고,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도시락 사서 길거리에서 먹고,
인터넷 연결 잘 안 되는 와이파이로
그때그때 방향을 틀었고.


아픈 몸으로 그렇게까지 다닐 줄은
나도 몰랐다.


심지어 오사카에서 유명하다는 곳은
왠지 다 들른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건 여행이라기보다
일종의 ‘생존’이었다.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근데 돌아오는 날이 진짜였지.


몸이 확 무너졌다.


공항에서 통신도 안 되고,
집엔 밤 12시 넘어서야 도착했다.


그 늦은 밤,
역 앞에서 날 마중 나온 엄마가
내 얼굴을 보고 한마디 했다.


“말이 아니더라.”

그때, 나한테
여행은 ‘즐거움’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더 어울렸다.


아픈 몸으로
힘든 하루를 견디던 마음으로
그냥, 그렇게라도 어딘가를 걷고 싶었나 봐.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내가 정말 아팠던 걸까?


아니면,
살아보고 싶었던 걸까.


첫 여행에서 내가 얻은 건
기념품도, 사진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무모했다고 말할지 몰라도,
그때 나는 분명히,
‘살아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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