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유학생이 아니라 그냥 자퇴생이잖아
유학을 떠날 때 학교를 선택하려면 고려해야 할 것이 아주 많다. 우선,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에 맞춰 학비 또는 홈스테이 비용을 따져본다. 그다음엔 원하는 수준, 지역, 환경 등을 생각해 학교를 결정한다. 이렇게 두 문장 안에 간단히 설명했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학교를 조사하는 과정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과 어울리는 유학원을 찾는 것도 까다로웠다. 혹시 유학을 준비하는 분이 있다면 학교를 알아볼 때 구글에서 조건에 맞는 검색어를 넣어 학교 목록을 보여주는 사이트들을 이용하실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괜찮은 학교들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직접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당장은 힘들어도 후회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유학원을 찾을 땐 다양한 곳에서 상담을 받아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다.
나는 오랜 시간 끝에 꽤 만족스러운 학교를 찾아 미국 캔자스 주의 한 사립학교로 유학을 확정 지었다. 그 시점이 3월 언저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입학허가를 받고 나서 생각했다.
'나 이제 뭐 하지?'
미국에서는 첫 학기가 8월 중순에 시작하기 때문에 이미 자퇴까지 한 나는 사실상 할 게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해야 할 것'이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한 번도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서 이렇게 완전히 벗어난 적이 없어서 발가벗은 것 같기도 하고 자유를 찾은 것 같기도 했다. 안개 낀 도로처럼 흐릿한 길 위에서 두려움 속에 해방이라는 희열을 느꼈다.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건강한 몸을 가지려면 운동은 필수일 테고, 그곳에서 부족한 실력으로 따라잡으려면 예습을 해 둬야 할 거고, 영어책도 좀 읽고... 학교 밖에서도 할 게 이 정도로 많을 줄은 상상도 못 했었다. 조금씩이라도 계획을 세워서 해야지라고 다짐하며 야심 차게 약 5개월 간 보낼 시간을 꽉 채웠다. 그렇지만, 인생이 계획대로만 흘러가면 재미없지.
자퇴를 했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리 없다는 걸 그때는 깨닫지 못했다. 학교 안에서도 못 할 것을 학교 밖이라고 잘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학교 안이라서 하던 것을 안 하게 된다. 내 게으름을 통제해 줄 강제성이 사라지자 하루 계획을 통째로 날리기도 하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면서 죄책감만 커지기도 했다. 이대로는 유학생이 아니라 그냥 자퇴생, 그것도 내 가능성을 포기한 자퇴생처럼 살게 될까 봐 변화를 줄 무언가를 찾기로 했다. 어?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뒤에 산이 하나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