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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Jul 10. 2023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작별인사

한국에서 미국으로, 1막에서 2막으로 

결국 내 유학 메이트의 비자는 나오지 않은 채, 출국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의지할 친구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서로 말하곤 했는데, 둘 다 홀로 비행기에 타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고 두려웠다. 떠나는 쪽도, 남겨지는 쪽도. 

전날 밤, 늦게까지 짐을 싸고 침대에 누웠다. 

'난 정말 무슨 생각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했지?' 

원래 바로 전날이 가장 후회되는 법이다. 뭐, 어차피 그러다 골아떨어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아침이었다. 일찍 교회에 나가 아침예배를 드리고 공항버스에 올랐다. 중간에 들린 휴게소에서 호두과자를 사먹었는데 한 동안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정말 맛있었다. 

수속을 끝내고 같이 출국하는 남학생 둘을 만났다. 동갑 한 명, 오빠 한 명이었는데, 다들 어색해서 부모님들끼리만 열심히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떠나려 했던 친구가 더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둘은 먼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지나가고, 이제 정말 작별인사밖에 남지 않았다. 그제서야 실감이 났던 것 같다. 나 정말 지구 반대편,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곳으로 혼자 떠나는구나. 울고 싶지는 않았는데 눈앞이 조금씩 흐려졌다. 그래도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고 싶어서 걸어 들어가다 말고 마지막으로 크게, 씩씩하게 손을 흔들면서 웃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흔드는 엄마 아빠의 모습은, 내 뒤를 항상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든든함이었고, 이제 내 곁이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허전함이기도 했다. 면세점을 지나치며 외로움인지 해방인지 모를 감정에 휘둘렸다. 40번 게이트를 찾아가는 발걸음이 떨리기는 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비행기 좌석은 가운데 네 자리 중 끝이었다. 이어폰에서는 'Better Than One'이 흘러나왔고, 그 비트에 맞춰 비행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기체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지는데, 그 떨림이 비행기의 것인지, 내 심장 박동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 심장의 떨림이 긴장인지, 두려움인지, 아니면 설렘인지도 알 수 없었다. 땅을 박차고 떠오르는 충격이 가시자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하도 강렬해서 바깥의 모든 게 페이드 아웃 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그 장면이 내 인생의 새로운 시기를 열어주는 것 같았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이제 정말, 미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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