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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우 Aug 03. 2023

당신의 영혼을 물들일 노래,
뮤지컬 <멤피스>

허락되지 않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1950년대 미국의 테네시주, 멤피스라는 도시에 휴이와 펠리샤가 살고 있다. 휴이는 백인 남자, 펠리샤는 흑인 여자. 흑인들의 구역에 흑인 클럽인 언더그라운드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에 매료된 휴이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 펠리샤에게 반한다. 인종 차별이 당당한 시대와 지역에서 음악으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흑인 음악'이라며 배척받는 로큰롤의 매력을 멤피스에 알리려는 휴이와 피부색에 방해받지 않고 마음껏 노래하고 싶은 펠리샤는 끝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


뮤지컬 <멤피스>는 인종 차별을 다루기 때문에 한국인에겐 피부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어디든 존재하는 차별과 억압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머리와 의상 등으로 인종을 구분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공연을 보며 헷갈린다면 대체로 검은 머리가 흑인, 금발이 백인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자칫하면 백인이 흑인을 구원하는, 되려 인종차별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데, 클리셰를 따라가지 않는 스토리 라인이 반가웠다.


무대의 화려하고 반짝이는 연출은 브로드웨이의 향이 강하다. 관객의 눈앞에서 끝없이 스펙터클이 펼쳐지기 때문에 한시라도 한눈을 팔아선 안된다. 번쩍번쩍 빛나는 무대와 그보다 더 화려한 보컬과 퍼포먼스가 합쳐져 시너지가 엄청나다. 무대 위의 열기가 객석까지 느껴질 정도로 에너지가 폭발했다.


<멤피스>의 넘버들은 일관된 분위기 속에서도 차별화된 넘버들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포스터처럼 푸른빛과 분홍빛의 노래들이 때로는 환한 조명의 빛깔이 되고 때로는 감성 충만한 새벽하늘이 된다. 짜릿함과 먹먹함을 동시에 선물하는 공연이다.

관람한 회차의 캐스트는 고은성, 정선아, 최정원 배우님. 세 분 모두 당연히 엄청난 실력을 자랑하신다. 휴이는 연기력, 펠리샤는 가창력을 가장 많이 뽐낸다.


휴이는 테네시에서 나고 자란 촌사람이다. 세련됨이란 찾아볼 수 없고, 누가 뭐래도 고집불통 마이웨이인 데다 선을 모르는 현란한 말솜씨로 쉽게 미움을 산다. 고은성 배우님의 휴이는 입방정을 떨면서도 순수함이 있는, 자신감을 잃지 않는 휴이다. 최근 더뮤지컬 인터뷰에서 배우님은 자신이 이유도 알 수 없이 뮤지컬에 끌렸고 그 사랑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내놓은 것처럼 매 장면에서 음악과 하나가 된 것 같았다. Memphis Lives in Me를 부르는 그 순간,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은 휴이 그 자체였다.


정선아 배우님은 뮤지컬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항상 통통 튀는 휴이에 비해 차분하고 근본적인 두려움을 안고 사는 인물이지만, 휴이를 만나고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 그 감정선이 섬세하고 친절해서 관객이 편안하다. 게다가 배우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휴이가 반하는 것도, 세상에 알려져야 할 스타라는 것도 한 치의 의심이 없어진다. 




*스포일러 포함*

휴이와 펠리샤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함께 뉴욕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자신의 꿈도 안전도 포기하고 남을 수 없는 펠리샤도, 매 걸음에 영혼이 서린 고향을 떠날 수 없는 휴이도 틀리지 않았으나 함께 할 수는 없었다. 펠리샤는 떠나고 휴이는 남았다. 그러나 둘 다 나아갔다.


<멤피스>는 인종차별만을 다룬 공연이 아니었다. 사랑과 음악, 그리고 꿈.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중심을 꿰뚫는 이야기들이다. 휴이는 음악을 말하고, 펠리샤는 꿈을 노래한다. 그런 둘이 사랑에 빠진다. 


펠리샤는 가수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한다. 당시 흑인으로 살아가며 처하게 되는 상황들, 지금과는 차원이 다르게 슬프고 위험했을 것이다. 평생 자신의 가능성을 외면하고, 꿈을 억눌러야 했을 펠리샤가, 드디어 한 줄기의 빛 같은 기회를 얻는다. 자신이 먼저 높은 곳에 올라야 함께하고 싶은 모두와 함께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가능성이기도 했다. 앞에서 그들을 끌어 줄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을 위해 혼자라도 최선을 다해서 걸어가는 사람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휴이는 백인임에도 가난 때문인지, 타고난 성향 때문인지 아웃사이더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잘하는 것 하나 없고, 사고만 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음악에 대한 사랑 하나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들을 시원하게 깨버렸다. 어떻게 보면 대담하고 어떻게 보면 무모할 수 있는 그가, 항상 점잖고 깨끗한 백색의 사회에 색색의 물감을 뿌린다. 주어진 기회가 자신을 잃게 만든다면, 또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사람들을 포기하게 만든다면 언제든 던져 버리는 그런 사람이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했던 휴이는 두 사회의 연결고리로 다시 태어났다. 처음엔 백인 사회의 외톨이, 흑인 사회의 이방인으로 시작했던 그가 스타 DJ가 되고, 진정한 가족을 찾았다. 그러니 가족이 있는, 자신의 시작이 있는, 로큰롤이 있는, 영혼의 고향에 영원히 남을 수밖에.




'흑인 음악'이라며 다들 멀리하던 로큰롤을 휴이가 소개하자 방송국으로 전화가 빗발친다. 음악의 힘은 차별과 갈등이 당연한 때에도 같은 것 하나 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준다. 흑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누구보다 컸던 휴이의 엄마도 아들의 진심에, 노래가 부린 마법에 피부색은 피부색일 뿐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흑인 클럽의 사람들은 백인이 들어왔다며 떠나려던 때는 잊고 휴이를 가족으로 받아준다. 우리의 제각각인 겉모습보다 깊이, 의견의 차이보다도 깊이 들어가 영혼의 어딘가를 건드리고, 새로운 다리를 놓아 서로의 가장 벌거벗은 모습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음악이고 예술이다. 휴이는 그 불씨를 던질 용기를 냈다. 직접 바지까지 벗어 가면서 말이다 :)

그럼 나에게도 음악의 마법을 보여준 휴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하카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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