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vs 록 스피릿
학생 시절 내가 부러워 마지아니했던 성실한 친구가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었다. “난 네가 부러워. 넌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수 있잖아.”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혹 놀리려고 하는 소리인가 싶어 그 애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눈망울은 뜻밖에도 한없이 진지했다.
당시 우리는 조각보 만드는 수업을 들었다. 도면을 그리고 색색의 조각 천들을 골라 손바느질로 연결해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최근에서야 검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주의력이 매우 약하고 작업 기억 능력이 경계선까지 떨어지는 나에게 조각보 만들기란 못 하는 일만 하라고 모아 놓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거였다. 원하는 조각보의 모습을 떠올려 그리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 다음 부터였다. 정확한 치수를 측정하고 자를 대 '똑바로' 천을 자르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집중해가며 가위질을 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조각보에 쓸 천은 꽤 비쌌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음에도 색색이 조각천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삐뚤었다. 바느질로 연결하면 비뚜름한 부분이 가려지지 않을까 애써 위로하며 작업에 임했다.
가위질을 못 하는 사람이 그보다 훨씬 어려운 바느질을 잘 할 리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아무리 집중을 해도 바늘과 실이 움직여 천을 꿰매는 일련의 움직임 과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하는 걸 뚫어져라 쳐다봐도 머릿속엔 온통 물음표만이 가득 했다. 대체 얘들은 어떻게 저걸 이해하는 걸까, 눈으로 본 걸 손이 구현해 내다니……. 어릴 적 종이접기 수업 시간만 되면 좌절하던 나였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선생님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조금만 복잡한 구간이 오면 바로 이해의 끈이 뚝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머리는 같은 걸 봐도 남들보다 공간 개념을 받아들이는 능력이 떨어졌다.
나의 목표는 이제 교수님이 가르쳐 주신 전통 바느질을 토대로 조각보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무슨 방법을 써서든 천을 이어붙여 조각보 비스무리한 사각형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망칠 게 분명했지만, 아예 안 해서 체면이 깎이느니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쓰레기를 만들더라도 완성은 하는 게 나았다. 부족한 능력으로나마 손을 놀리다 보니 어느새 바느질로 천을 잇는 방법까지는 터득했다. 밤을 꼬박 새워서 겨우 조각보를 완성했다. 다른 아이들의 것이 네모반듯하게 정렬되어 마무리까지 그럴싸했다면 내 것은 비 오는 날 지렁이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실루엣이며 무질서하게 이어놓은 조각천들이 제각기 온몸을 뒤틀며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들은 마치 '내가 이러려고 조각천이 된 게 아닌데'라며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 과대였던 그 친구에게 문제의 대사를 들은 것은 과제를 제출한 뒤의 일이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교수님이 나의 불쌍한 조각보를 보고서 했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이거 누가 한 거니?" 친구의 말에 의하면 교수님이 내 작품을 보자마자 빙긋 웃으셨다고 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으셨던 게 아닐까. 그분의 평소 말투며 표정을 떠올리며 상황을 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별안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말을 던진 것이었다. 아니, 이런 내가 부럽다고? 좋아하는 과목을 제외한 모든 수업의 과제를 꾸역꾸역 겨우 따라가는 데다 하루가 멀다고 수업에 지각하는 나를? 아프다고 꾀병 부리며 수업을 빼 먹고 밥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마침 거기서 쫑파티를 하고 계시던 교수님께 별안간 뒤통수를 맞은 나를? 대체 왜?
그 애는 하기 싫어 몸부림치는 자의 영혼이 고스란히 담긴 내 작품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자기라면 어떻게 해서든 정상처럼 보이게 하려고 애썼을 텐데 교수님께 당당하게 망작을 선보인 내가 용감하다고 했다.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안 하는 녀석이라고 주구장창 욕만 먹었던 나였기에 그 애의 말은 놀랍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더군다나 고작 그런 이유로 타인을 부러워하다니. 진심으로 하기 싫은 일이라면 안 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무언가를 평균만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웠다. 아마 그 애에게 물어봤던 것 같다. “그러면 너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면 반드시 해?”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반대로, 나는 오랫동안 하기 싫은 걸 할 줄 아는 사람이 부러웠다. 그런 아이들은 어디서든 무난하게 사람들과 잘 어울렸으며 공부도 곧잘 했으므로 장래도 밝을 터였다. 나의 소위 막돼먹은 기질을 부러워했던 그 친구도 아마 지금쯤 따박따박 돈 들어오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평탄하게 일을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 않을까. 그에 반해 나는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하는 데다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금세 싫증을 냈던 탓에 뿌리 없이 물 위를 둥둥 떠 다니는 부평초처럼 바람 따라 물결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바빴다. 나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는 자식이었으며 말 빨 안 서는 누나였다.
오랫동안 그때의 대화를 잊고 살았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는 걸 '능력'으로 보고 또 그걸 부럽다고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서였을까. ADHD일지도 모른다는 얘길 듣고 나서, 주의력이 매우 결핍 되어 있으므로 치료가 꼭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받고 나서 보니 나 대신 나의 부족함을 능력으로 봐준 그 친구가 고맙다. 어차피 주의력이 부족해서 하기 싫은 걸 죽어도 못하는 기질을 태생적으로 타고났다면 의지력 부족이니 하는 말보다 ‘능력’이라고 높게 쳐주는 말을 주워 담는 게 훨씬 이득이 아닐까. 사실 ‘하기 싫은 걸 안 할 수 있는 능력’이란 주의력 결핍이라는 어두운 말보다는 록 스피릿의 전복적 반짝임에 더 가까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