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초미씨는 어쩌면 ADHD일 수도 있겠어요. 검사를 한 번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내 귀로 듣고서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내가? ADHD라고?
내게 ADHD란 난독증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 질환이었다. ADHD일 것으로 추정되는
나의 반려자가 글씨를 아무리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저는 책 읽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데요?”라는 말이 즉시 입에서 튀어나왔다.
의사는 모든 ADHD는 각양각색이라고, 부족한 주의력이나 심한 충동성을 다른 능력치로 보완하며 살아왔을 수도 있다고 했다. ADHD라고 해서 반드시 책을 못 읽는 건 아니라는 말도.
저번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다른 곳으로 떠나신 후 새로 온 이 의사는, 브릿지가 살짝 들어간 염색 머리가 특징인 젊은 여성이었다. 밝게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한 그녀가 진료로 얼굴을 맞댄 지 몇 번 만에 ADHD 검사를 권유한 것은 그동안 쌓인 진료 기록과 그날 내가 한 말 때문이었다. 그 전에도 여러 번 하던 일을 그만둔 전적이 있던 내가 이번에도 또 직장을 그만 둘 계획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ADHD 환자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특징 중 하나가 잦은 이직이라고 했다. “ADHD 환자들은 많은 경우 우울증을 동반하기도 해요.” 그녀의 합리적인 의심에 설득된 나는 검사 권유를 받아들였다.
성인용 ADHD 자기-보고 척도(ASRS-V1.1), 웩슬러 성인 지능검사, TCI, Rorschach, MMPI-2, CAT(종합주의력 검사) 등의 갖가지 검사를 했다.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결과를 CAT에서 받아 보았는데, 검은 화면에 차례대로 나타나는 도형들을 계속 누르다가 누르지 말아야 할 도형이나 기호가 나왔을 때 즉각 손을 멈춰야 하는 식의 침팬지한테나 시킬 법한 이 테스트에서 온통 저하를 받은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나와 비슷한 성적표를 받은 사람이 있나 살펴봤지만 대부분 나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둬 놓고서도 약을 타 먹고 있었다. 나처럼 전 영역에서 다 저하와 경계가 뜬 사람은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는) 없었다!
검사 결과를 받아 들고 보니 두꺼운 장막 속에 갇혀 있던 지난 기억이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매일 밤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해 뜬 눈으로 지새우다가 아침에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밥을 뜨던 기억, 숙제가 있다는 자체를 모르고 있다가 수업 바로 전 쉬는 시간에 허겁지겁 해치우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 챙겨 놓은 준비물을 현관에 놓고 가는 바람에 혹은 준비물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먹어서 쪽팔림을 감수하며 애들에게 손을 벌렸던 셀 수 없이 많은 나날들…….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힘들고, 세울 생각 자체가 안 들며, 따라서 당장 눈앞의 설거지 계획도 세우지 못하는 나를 보며 주의력 부족의 결정체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폭폭 쉬었다.
자궁 속에서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되었다는 이유로 운명의 향방이 결정되다니 이보다 더 기가 막힐 노릇이 있을까. -자궁 속에서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되면 ADHD 위험이 높아진다고 한다. 테스토스테론에 많이 노출된 경우 검지가 약지보다 짧다고 하는데 내 손은 두 쪽 다 검지가 약지보다 짧다! - 본격적으로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곧 당혹스러움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약효가 지속되는 동안에 눈 나쁜 사람이 안경을 쓴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이 약은, 다행히도 내게 잘 맞았다. 약을 먹은 날의 나는 확실히 달랐다. 사람 이름이 즐비한 표를 읽을 때 다시 되돌아가 읽지 않아도 내용이 파악되었고 한 일과 아직 하지 않은 일이 헷갈리지 않았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잠시 보류해 뒀던 일도 잊어버리지 않고 처리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수첩에 일일이 적어놔도 다 처리하지 못했던 일들이 약을 먹으면 수월해졌다. 가끔 약 먹는 걸 깜빡한 날이면 내가 평소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새삼 깨닫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안경을 쓰고서야 비로소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선천적으로 부족한 주의력을 콩알 반쪽보다 작은 약으로 보완할 수 있음을 알게 되자 세상이 달리 보였다. 줄곧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여겼던 일들이 사실은 타고난 능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엄마 자궁 속에 있던 내가 어떻게 테스토스테론에 적당히 노출되기를 선택할 수 있었겠는가. 모든 건 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우리 집 개가 6.5kg 정도의 체구를 지닌 개로 자라난 것도, 우리 엄마 친구의 딸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를 잘해서 서울대를 간 것도, 내가 이 모양 이 꼴인 것도 다 생겨 먹은 걸 토대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온 결과였다. 이 세상에 자기가 되기를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사람분의 삶은 태어난 꼴과 자라난 환경 그리고 우연과 필연이 겹치고 겹쳐 만나게 된 인연들이 만들어낸 기억의 총합이었다. 타고난 꼴이 맘에 들든 맘에 들지 않던, 적어도 그 사실에서만큼은 모든 사람이 평등했다. 따라서 사람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것도, 누군가를 쉽사리 판단 내리는 것도 다 하등 쓸모없는 짓에 불과한 거였다. 애초에 이토록 처절하게 평등했던 것을, 왜 그리도 색안경을 쓰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그제야 사람들의 맨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저마다 운명처럼 타고난 몸뚱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애쓰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