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by 푸르른도로시


나에게는 오랜 고질병이 있다. 정신과에서 피해 사고와 인지적 사고라고 일컫는 것들이 그것이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20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나를 욕하는 망상에 자주 시달렸다. 망상의 종류도 가지가지였다. 길 가던 사람들이 갑자기 멈춰서 노려보기도 하고 한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비난을 쏟아 붓기도 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생각이 아니었다. 멈추고 싶다고 바로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번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 불안한 마음을 붙잡고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원래 무대 공포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유치원 시절 학예회에 나가서 곧잘 발표를 했고 사람들 앞에 섰을 때의 두근거림을 은근히 즐기기까지 했다. 발표를 할 때도 그다지 떨지 않는 편이었다. 그랬던 내가 한때 모두가 나를 적의에 찬 눈으로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에 발표를 꺼렸던 적이 있었다. 원인은 집단 따돌림이었다.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다. 지금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듯 공허했던 느낌과 상상 속에서 학교 건물을 수 천 번도 넘게 폭파 시키게 만들었던 분노와 억울함만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따돌림’이란 단어는 고통이다. 컴퓨터 자판으로 칠 때조차 손가락이 아파오는 느낌이다. 입으로 내뱉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간혹 자신이 겪었던 일을 털어 놓는 피해자를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어떻게 그 일들을 저렇게 상세하게 기억하면서도 계속 살아갈 수가 있지? 나라면 못 버텼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한다.


심지어는 상담을 받을 때도 이 얘기는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거의 기억나는 게 없어서 이기도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아파서였다. 그 일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좌절감이 느껴졌다. 무관심 했던 선생님들과 같은 반 아이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 놓으면 오히려 ‘왜 가만히 당하고만 있냐. 반격 못하는 네 잘못이다.’라고 하던 아빠와 역시 ‘넌 왜 다른 애들처럼 정상적으로 친구를 못 사귀니.’라고 울며 속상해했던 엄마가 생각나 기분이 아주 무거워진다.


언젠가 상담 선생님께 “잊었던 기억이 올라온다는 건 이제 그걸 감당할 마음의 힘이 생겼다는 뜻이에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만약 그 말이 이 경우에도 해당된다면 나는 절대로 그럴만한 마음의 힘을 가지고 싶지 않다. 흔적만으로도 아픈 기억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올라오면 아무리 마음이 강해도 견딜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간혹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요가를 하면서 무언가 잊고 있던 감정이 사르르 올라오려 할 때면 하던 일을 멈추기 바빴다. 인정하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일을 당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른 동네로 전학을 갔다가 시작된 일이었다. 아마도 행동이 좀 어설펐을 별로 예쁘지도 않은 낯선 애는 괴롭히기 좋은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면 “네가 못생겨서 괴롭혔어.”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별 시답지 않은 이유로 수없이 많은 점심시간, 체육시간, 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소풍 등을 죽고 싶다는 생각만 되풀이 하며 보냈다. 등하교 길에 혹여나 괴롭히는 애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바로 조리돌림을 당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을 바닥으로 깔고 다녔다. 본격적인 괴롭힘이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바닥만 보며 다녔던 것 같다. 반 아이들은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와 친해지면 그 애들이 다가와서 같이 괴롭히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오랫동안 시선 공포증과 피해망상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 내내 부모님이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서조차 마음 편하게 있을 수 없었다. 집안 분위기는 좋을 때보다 안 좋을 때가 더 많았고, 잔뜩 날이 서있는 부모님 앞에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괴로운 마음에 힘들었던 일 중 일부를 털어 놓으면 공감과 위로보다는 이제 좀 그만하라는 말이 돌아 올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학교를 안 가면 될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초등학생이 낼만한 꾀가 아니었기도 하거니와 한 없이 쪼그라든 자아를 가지고 쉽사리 할 수 있는 생각도 아니었을 거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트레스 상황에 계속 노출 되면 뇌에 손상이 간다고 했다. 당시의 나를 생각해보면 틀림없이 스트레스로 뇌가 망가진 상태였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살해를 당하는 등의 끔찍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에 잠을 못 이루거나 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내가 나라서 안 될 거야’ 모음집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괴로웠다.

이토록 망가진 나였기에 친구를 사귀는 일도 쉽지 않았다. 어릴 적 사회성이 떨어지는 성격을 타고났던 데다 전학을 여러 번 한 탓에 친구를 오랫동안 사귄 경험이 없어 친구에게 잘 해주는 방법을 몰랐다. 거기에 피해 의식과 인지 왜곡까지 합세하니 지옥행 열차에 탑승한 거나 다름없었다.







2021년에 풀 배터리 검사를 했다. 임상심리사 선생님이 피피티를 띄워 놓고 여러 가지 그래프를 보여 주며 설명을 해주셨다. 그때 선생님으로부터 “히초미씨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타고나길 그렇다고 했다. 이미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던 사실을 타인의 입을 통해서 듣자 생경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사람에게 상처 받고 덕분에 바로잡기 힘든 마음의 왜곡까지 일어났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했다. 때로는 주인에게 맞고도 꼬리를 흔드는 개가 된 심정으로 사람들 사이에 꾸역꾸역 끼어 있을 때도 있었다. 일견 쿨 해보이기라도 하는 회피형 애착 유형들이 부럽기까지 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사람을 좋아하면, 대체 어떡해야 하나. 인생은 온통 앞뒤가 안맞는 일 투성이었다.


몇 년에 걸쳐 세 차례 상담 치료를 받고 2년째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는 지금도 상태가 안 좋을 때면 종종 관계 망상에 시달리곤 한다. 잊을 만 하면 튀어나와 나를 괴롭히는 그 증상들을 바라보며 언제까지 시달려야 하나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때로는 그 동네로 이사를 결정했던 부모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만약 그 학교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훨씬 수월한 삶을 살고 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들어 밀려오는 억울함에 가슴을 친 적도 많았다.


하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그때 그 동네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내 곁의 인연들과도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나 자신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으니 나를 다른 버전으로 갈아치우는 건 괜찮아도 내 주변 사람들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없다. 힘들었던 시절 곁에 있어 주었던, 아직까지도 가장 친한 사이로 남은 친구들과 언제나 힘이 되어주는 남편, 강아지, 여타 함께 의지하며 삶을 꾸려나가는 소중한 인연들과 이름도 모르는 사이가 되고 싶진 않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Ryu Takizawa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따돌림 후유증은 40년이 지난 후에도 지속된다고 한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나 또한 후유증에 얽매여 있었던 것 같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수면 패턴이 늘 엉망이었고 조그마한 사건에도 불안이 증폭되어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이런 세월이 아직도 20년이 넘게 더 남았다고 생각하면 도무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언제쯤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언제? 어떻게?


이럴 때면 그 세월이 내게 남긴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한다. 우선 그 시절이 힘들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때 사귄 친구들이 소중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던 시기에 곁에 있어 준 이들이기에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믿음이 있다. 어쩌면 함께 그 시기를 버텨냈기 때문에 더 깊이 뿌리 내릴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잘 해주는 사람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의 배려만 있어도 진심으로 감동하고 가슴 속 깊이 간직한다.


언젠가 한 번 유리컵을 깨트린 적이 있었다. 현재의 반려자인 당시의 남자친구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걱정부터 하며 꼼짝 말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한 후 유리조각을 치웠다. 그 당시에 받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얘기하자 친구들이 그건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행동이라고 말 한 적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기본적으로 낮은 것 아니냐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따라 나왔다.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한창 사회성이 길러질 시기에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긍정적으로 수용된 경험이 부족한 탓에 더더욱 조그만 일에도 쉽게 감격하는 지도 모르겠다.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이유도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정신 건강을 위해 이성이 마비된 극단적 감사가 필요할 때가 있다. 호의를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적어도, 지난 경험에 감사한다. 뒷맛은 좀 씁쓸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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