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로부터 배우는 사랑법

by 푸르른도로시


개는 비범한 동물이다. 그들은 몇 만 년의 세월 동안 인간과 함께 하며 대대로 인간 마음의 냄새를 맡는 법을 유전자에 새겼고, 덕분에 지구상에서 가장 번성한 포유동물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따뜻한 피를 지닌 동물들이 으레 그렇듯이 개들도 서로 온정을 나누며 살아간다. 하지만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그들이 극도로 인간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종의 차이가 무색하게도 인간과 닮았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맹목적으로 좋아한다는 점에서 친화적인 걸 넘어 의존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을 좋아하고 인간과 닮은 표정을 짓는다 한들, 개는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인간보다는 늑대에 훨씬 가깝다. 그럼에도 개는 인간을 좋아하고 인간 또한 개를 좋아한다. 인간은 온갖 동물을 갖가지 이유로 키우지만, 오로지 개(와 고양이)만이 주로 반려 생활만을 위해 길러진다는 점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희한스러운 위상을 온 지구상에 떨치고 있다. 그들은 지구상의 최상위 포식자에게 선택받은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개는 경계선 상의 동물이다. 인간의 삶에 가장 밀접하면서도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다른, 그래서 ‘개’로써의 생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인간을 사랑하는. 동물이되 '동물'이 아닌 동물. 현대 사회의 인간들이 유일하게 소통(혹은 한다고 착각하는)하는 다른 종의 동물이자 가장 오랜 세월 길들여진 털이 난 네발 동물.


개는 복잡한 계산 없이 그저 개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인간을 사랑한다. 물론 그들의 dna안에 따뜻한 집과 음식을 제공하는 인간에게 들러붙어 살아남으라는 명령이 새겨져 있긴 하지만 개는 가족이 된 인간을 버리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백히 인간과 다르다. 그들의 세계에는 오로지 맹목적 사랑의 규칙만이 있기 때문에 조건 따위를 따지지 않는다. 인간은 애착관계가 형성되어도 필요에 따라 개를 버릴 수 있지만 개는 한 번 가족이 된 사람에게 조건 따위를 걸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이 개를 사랑한다고 해도 개가 인간을 사랑하는 것만큼 사랑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마땅히 개가 인간을 사랑하는 방식을 배워 응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사랑하는 법에 있어서 개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으니까.


다음은 내가 우리 집 개와 5년을 함께 살면서 느낀 배울 점들이다.


1. 판단하지 않는다.


물론 개들도 판단 비슷한 걸 하기는 한다. 우리 집 개는 일반적으로 검은 옷을 입은 덩치 큰 남자, 노인(특히 할아버지), 술에 취해서 비틀 거리는 사람, 마구잡이로 소리 지르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젊은 여자, 일반적으로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분위기를 지닌 남자에게는 첫 만남부터 꼬리를 치며 환하게 웃는다. 우리 개는 다리가 불편하신 분께 짖고 살갑게 다가오던 인도계 남자에게 으르렁댔으며 어두운 털을 지닌 개들에게 짖어대는 바람에 장애인 차별, 성차별, (피부·털) 색 차별견의 오명을 얻었다. - 단, 아무리 피부색이 어두워도 젊은 여자이기만 하면 아무 상관이 없다. 인도계 남성의 경우도 덩치 큰 남자라서 사랑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털이 검은 개를 경계하는 이유가 뭔지는 아직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


하지만 가족으로서 녀석을 변호를 하자면, 겨우 6.5kg에 불과한 녀석의 시각에서 발목까지 오는 검은색 롱 패딩을 입은 덩치 큰 남자의 시꺼먼 실루엣이나 다리가 불편한 분의 예상치 못한 움직임은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는 인간 사회의 구성원에 관해 충분히 학습되어 있지 않은 다른 종의 동물이므로,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오로지 감각만으로 안전과 위험을 감지하기 때문에 테스토스테론의 강한 향취라던가 규칙적이지 않은 움직임을 위험한 신호로 여길 수도 있다. 이 점은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다른 종의 동물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판단 오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인간 또한 다른 종과 함께 산다면 충분히 그들을 오해할 테니까. 실제로 그러고 있기도 하고.


본능적으로 호오를 가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질을 제외하면, 개들은 자신의 친구와 가족을 ‘판단’ 하지 않는다. 개들에게 가족과 친구의 능력은 관심 밖의 일이다. 그들은 주인이 단칸방에 살던 100평짜리 정원이 딸린 전원주택에 살던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두 번째 집에 사는 개가 더 건강하고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전원주택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귀가한 단칸방 개가 혀를 끌끌 차며 넌 대체 왜 이 모양이냐고 주인을 타박하진 않는다. 개의 세계에는 감각에 따른 순간적 판단은 있을지언정 조건에 따라 우열을 가리는 류의 가치판단은 없다. 개에게 넓은 집은 넓은 집이요 좁은 집은 좁은 집 일 뿐이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구가 대단한지 보잘것없는지를 따지기보다는 관계 안에서 제 몫을 찾아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끝까지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맹목적인 사랑법 때문에 개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뒤통수를 맞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개들이 맹목적이어서 좋아한다. 아주 어린 인간을 제외하면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줄 수 없는 사랑을 개가 주기 때문에 그들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개의 사랑으로 인해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근본적으로 평등할 수 없는 개와 인간의 관계는 인간의 필요와 개의 그 필요보다 더 큰 사랑으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다. 그 속에서 인간은 언제든 발을 뺄 준비가 되어 있지만 개는 자신의 전부를 건다는 점에서 이 사랑 게임의 승리자는 개다.


3. 30분 전에 봐도 30일 만에 본 것처럼 반가워한다.


개는 매일 봐서 익숙해진 대상에게도 늘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반기기’이다. 개는 30분 전에 본 대상도 일단 집에만 무사히 들어오면 온 몸을 던져가며 반긴다. 그들은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 무리 구성원의 조그만 변화도 개들은 놓치지 않는다. 그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상대방이 묻히고 들어온 새로운 정보를 수집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상대의 하루 일과를 묻고, 자신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한다. 선천적으로 다정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가족이 추리닝 바람으로 편의점에만 잠깐 다녀와도 관심을 보이며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 귀한 했다는 자체에 기쁨을 표한다.


4. 마음이 가는 그대로 꾸밈없이 표현한다.


그들은 마음을 연기하지 않는다. 낯선 상대에게 억지로 친한 척하지 않는다. 대신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천천히 상대를 알아간 다음 시간이 쌓이면 그제야 비로소 반가움을 표한다. 반갑지도 않은데 억지로 반가워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미덕이다. 그들은 처음 만난 상대에게 무안하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표할 줄 안다. 한 번 친해졌던 사람이면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만나도 데면데면하게 굴지 않는다. 정말로 기억이 안 나면 관심을 안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음에서야 일부러 모른 척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관심 있는 척 연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개에게는 아무리 무시를 당해도 상처가 크지 않다. 인간은 필요에 따라 관심 있는 척했다가 필요가 없어지면 즉시 숨겼던 본마음을 드러내기 일쑤지만 개들은 관심 없는 대상에게는 일관성 있게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인간보다 훨씬 고결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 어디든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한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다가 길을 잃어서 헤맨 적이 있었다. 갓 집을 나왔을 때는 폴짝폴짝 경쾌하게 뛰다시피 걷던 녀석의 걸음걸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느려졌다. 딱딱한 아스팔트 길을 걷기를 한참, 두 시간이 지났을 즈음 녀석이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더니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동그란 두 눈 가득 난처함이 가득했다. ‘너와 함께 나와서 너무 좋아. 그런데 다리가 너무 아파서 더 이상 못 걷겠어.’ 녀석은 길을 잃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믿고 묵묵히 옆에서 함께 걸어 주었다. 다리가 아픈데도 내색 않고 끝까지 버텨 주었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즈음 부드러운 어조를 눈에 담아 말했던 것이다. ‘조금만 쉬다 가자.’ 한참 동안 길을 찾지 못해 마음이 초조했지만 나만 믿고 따라와 준 녀석을 보며 힘을 낼 수 있었다.

나는 녀석을 안아 들고 다시 길을 나섰다. 한참 후에야 길을 찾은 바람에 강아지를 안은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아팠지만 마음만은 가뿐했다. 녀석과 나는 서로를 믿은 덕분에 별 탈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6. 뒤처진 사람을 기다려 준다.


우리 집 개는 절대 혼자 멀리 앞서 가지 않는다. 신이 나서 열심히 걷다가도 동료가 너무 뒤처졌다 싶으면 발걸음을 멈추고 기다린다.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녀석에게 그러라고 시킨 적은 없다. 녀석은 그저 자기가 그래야겠다고 느껴서 그렇게 할 뿐이다. 뒤처진 사람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함께 걷는 파트너가 재미있게 잘 걷고 있는지 궁금해하며 수시로 고개를 돌려 표정을 살핀다. ‘난 너랑 같이 걸어서 너무 즐거워. 너는 어때?’ ‘지금 이곳의 공기, 냄새, 온도 다 너무너무 좋아. 난 행복해. 넌 어때? 즐겁게 잘 따라오고 있어?’ 그들은 늘 무리의 안위를 살피는 늑대의 후손답게 일행이 잘 따라오는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틈틈이 체크한다. 물론 제일 좋아하는 인간 위주로 챙기기는 하지만.


7. 곁에 있어줘야 할 때와 혼자 내버려 둬야 할 때를 안다.


한창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던 시절,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된 나머지 가슴이 답답해 운 적이 많았다. 그날, 어두운 방구석에서 양 무릎을 끌어안은 채 하염없이 울고 있던 나에게 강아지가 다가왔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살그머니 다가온 녀석은 내 무릎 사이에 주둥이를 살살 들이밀더니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자기를 만지라는 듯 가만히 들어와 앉은 강아지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며 보드라운 털을 살살 쓰다듬었다. 녀석은 그렇게 한참 동안 내게 몸을 맡기고는 흐느낌이 격해질 때마다 표정을 살피고, 핥기도 하며 최선을 다해 위로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눈물이 잦아들고 마음도 얼마간 후련해졌을 무렵 녀석은 슬그머니 일어나 품에서 빠져나갔다.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가장 힘들 때 다가와 한참을 보살피다가 괜찮아졌다 싶으니 자기 할 일을 하러 간 것이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양손으로 개 껌을 꼭 잡고 씹고 뜯고 맛보는 녀석을 보며 고마움과 함께 약간의 경외감을 느꼈다.


감정 기복을 이기지 못해 벌컥 짜증을 내거나 울 때마다 녀석은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다가와서 냄새를 맡고 옆에 털썩 주저앉아 기대어 진정될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직 세 살 밖에 안 된 어린 강아지가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녀석을 봐서라도 기운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내 마음이 불안정할 때마다 우리 강아지는 단 한 번도 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는 곁에 있어야 할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았다. 강아지의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면서 나는 치료를 향한 마음을 많이 키워나갈 수 있었다.


어느 날 실험을 해보았다. 가짜로 우는 척 해도 녀석이 달려올지 궁금해서였다.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를 했다. 그날처럼 무릎을 끌어안고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한참이 지나도 오지 않던 녀석이 ‘저 인간이 대체 왜 저러나’하는 눈빛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내 앞에 멈추더니 무릎 사이에 코를 박고 큰 소리로 ‘킁!!!!!!!!!’ 냄새 한번 우렁차게 맡고는 사태 파악이 끝났다는 듯 제 자리로 돌아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마냥 남은 껌을 야무지게 뜯는 녀석을 보며 나는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나는 우리 집 개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녀석은 온 관심을 기울여 슬퍼하는 가족을 보살폈으며 단 한 번도 그만 좀 하라고 타박하지 않았다. 그는 나의 감정 기복에 때때로 놀란 눈빛을 보였으면서도 한마디 불평 없이 필요할 때 가만히 다가와 위로하고 괜찮아졌다 싶으면 쓱 빠졌다. 그리고는 힘든 일을 한 자신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편안한 자리에서 좋아하는 껌을 맛있게 뜯었다. 녀석은 넉넉히 사랑을 베푸는 동시에 자기를 보호할 줄도 알았다. 인간은 돈 들여가며 배워야 겨우 하는 공감과 자기 배려를 녀석은 아무렇지도 않게 척척 해냈다. 평소에 아무리 하찮아 보여도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녀석이 전문가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우는 척하는 실험을 통해서도 배운 점이 있었다. 가짜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리는 예리한 관찰력, ‘노력이 가상하니 한 번 가주지’ 하며 다가왔던 성의 없는 걸음걸이가 보여준 당당한 자신감과 넓은 배포, 굳이 킁! 소리를 뱃고동처럼 울려가며 자기를 속여먹으려 했던 인간에게 쪽을 주는 재치, 자리로 돌아가 하던 일을 마저 하는 능청스러움까지. 녀석은 여러 가지 미덕을 한 몸에 지닌 스승이었다. 앞으로 사랑은 개처럼. 아니, 강아지처럼 하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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