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에 시작하는 자기 양육
“누나, 사람은 백 살까지 살 수 있지?”
어떤 아이가 물었다. 나보다 한 살쯤 어린애였을 거다. 눈앞의 두 남자아이는 각기 ‘사람은 백 살까지 살 수 있다 vs 아니다 백 살까지 살 수 없다’ 두 가지 주장을 펼치며 논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전까지 해본 적 없던 생각이었으므로 당연히 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고 집에 와서 그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이 백 살 까지 살 수 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백 살까지 살 수 있었다! 아, 왜 그때 대답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다면 아이들이 나를 아주 똑똑한 사람으로 인정했을 텐데. 역시 한 살이라도 나이 많은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 감탄을 했을 텐데.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애의 인정 욕구가 바글바글 끓어올랐다. 100살까지 사는 삶이란 어떤 걸까 하는 궁금증은 채워지지 못한 욕구 저편으로 스르르 사라졌다.
나이 앞자리 숫자가 3으로 바뀌자 문득 어릴 적 묻어 놨던 질문이 떠올랐다. ‘100세까지 사는 삶이란 어떤 걸까.’ 10살, 20살 때는 나이에 대해 큰 자각이 없었다. 굳이 떠올려 보자면 10살 때는 조금 뿌듯했던 것 같다. 내가 드디어 열 살이 되었구나, 속으로 감탄을 했다. 뭐든지 할 수 있는 다 큰 어른이 된 것처럼 전지전능하게 느껴졌다. 유치원 시절,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그토록 우러러보던 10살 언니가 된 것이었다. 부푼 가슴을 끌어안고 혼잣말을 읊조렸다. ‘10살, 별 거 아니네.’
20살 때는 눈앞에 펼쳐진 무수한 가능성만을 바라보았다. 손발을 묶어 놨던 수많은 금지 사항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된 것 같았다. 난생처음 아르바이트를 했고 남자 친구를 사귀었다. 주량도 모른 채 주는 대로 받아 마신 술 때문에 기숙사 침대에 누워 토하는 역대급 민폐를 저질러 자다가 이불을 힘껏 걷어차기도 하고, 모든 걸 잊고 사라지고 싶은 충동에 수면유도제를 있는 대로 주워 먹고 다음 날 몽롱한 상태로 룸메이트에게 사실을 불었다가 ‘요즘엔 수면제로 죽을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 ‘알고 있다.’라고 대답하며 멋쩍어한 적도 있었다.
방황이라고 할 수 있을 수많은 시도를 마음 가는 대로 저질렀다. 아직 나이 앞자리에 2가 붙어 있었기에 밝았다가 어두웠다가 하면서도 금세 제자리로 돌아왔다. 100까지 가기엔 시간이 아주 많았다. 삶의 시곗바늘은 당당히 아침을 가리켰고 부모님은 여전히 나에게 기대를 걸었다. 삶은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앞자리에 3이 붙자 불현듯 세상이 달라졌다. 부모님의 기대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좋았지만, 반대로 나이답게 행동하라는 새로운 기대가 더해진 것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문득 아직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별안간 불안함이 파도처럼 엄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간 관심도 없었던 문제에 대해 결과를 바랐다는 게 우스워 코웃음을 치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랬다.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외치는 것 같았다. ‘이제 정신을 차릴 때도 되었잖아?’
막상 살아보니 서른의 나날도 20대의 나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난 여전히 남들 말처럼 현실 감각이 없었고 여전히 정규직이 되고 싶지 않았으며 여전히 감정적으로 불안정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겼고, 그를 위해 기꺼이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사실을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애쓰는 법을 익히고 있다는 것일 거다.
삼십 대는 우울과 함께 그 서막을 열었다. 방황으로 점철된 지난 세월이 헛되다는 생각에, 이제 그 세월을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았다. 그랬던 시절조차 이제 싫지 만은 않다. 헛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동안 마음껏 헛살지 않았더라면, 생산성과는 거리가 먼 공백의 시간을 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우울과 함께 시작된 30대를 주의력 결핍이라는 새로운 친구와 함께 항해 중이다. 우울은 나에게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감을 깨우쳐 주었고 ADHD는 세상을 넓게 보는 법을 기꺼이 가르쳐 주었다. 삼십 대가 되어서도 여전히 머릿속이 엉망진창에 통제 불능이어서 절망했지만 어느덧 그게 현재의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였고,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자 도리어 가야 할 길이 보였다. 이제 나는 스스로의 양육자이자 보호자로서 자신을 키우는 법을 조금씩 배워나가며, 매일 바뀌는 감정의 진폭을 살아있음의 생생한 증언으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걸어 나가려 한다.
수도 없이 글을 지웠다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우울증을 거쳐 ADHD 치료를 받고 있는 간헐적 백수인 30대 이야기라니, 이보다 더 별 볼 일 없기도 힘들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럴 때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를 떠올리며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선천적으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늘 보이지 않는 벽을 두르고 주변인들을 대하려 노력했던 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안전함을 얻은 대신 생생한 감정을 잃고 살았다. 타인의 비난이 두려워 애써 자신을 숨기려 하다 보면 어느샌가 다가왔던 인연들도, 금쪽같은 기회들도 저만치 멀어져 있곤 했다.
자신이 못 미더워 참을 수가 없을 때면 구글에 아무렇게나 키워드를 검색해보곤 했다. 혹시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이 있진 않을까 궁금했다. 간혹 파장이 맞는 글을 찾아 읽어 내려갈 때면 잃어버린 쌍둥이라도 만난 듯 반가웠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가 났고, 내가 차마 부끄러워 공개하지 못했던 종류의 이야기를 덤덤히 써 놓은 사람을 발견하면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도 영접한 듯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못난 내 모습을 아낌없이 풀어내 끝없는 자기 비난에 빠져 있을 나와 비슷한 주파수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그러려면 우선 나를 긍정해야 했다. 찬찬히 스스로를 들여다봤다. 30년 가까이 묵은 연못의 묵은 떼를 걷어내자 뜻밖에도 이미 텔레토비 동산의 아기 해님만큼이나 밝은 내 모습이 드러났다. 끝없는 자기 불신, 비관적 생각과 습관적 불안은 상당 부분 외부의 반응에 의한 것이었다. 남들이 네 조건이면 마땅히 불안해해야 한다고 하니 불안해했고 그 상태로 만족해선 안된다고 하니 역으로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는 나를 의심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자신을 못 미더워했던 게 아니라 오히려 굉장히 믿고 있었다. 별 다른 근거 없이 그저 내가 나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이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란 없다. 다만 그 믿음을 유지하고 살기에는 사는 게 녹록지 않아서, '너 답게 사는 건 틀린 거'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바깥세상의 온갖 부추김이 머릿속을 장악한 나머지 자신을 믿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진짜 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뿐이라고 말이다.
글을 쓰면서 나는 그간 마음속 깊이 숨어 있어야만 했던 진짜 나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끄집어내지 않아 먼지를 뒤집어쓴 녀석을 꼼꼼히 닦아 햇빛 아래 두자 놀랍게도 무지개 빛으로 다채롭게 빛나는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긍정도, 부정도 아니요 특정 감정이나 표정만으로 묘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각도와 빛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을 어찌 손가락으로 잡을 수 있을까.
어릴 때는 30대가 되면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다. 막상 그 나이가 되어보니 주변 어른들이 이런 내 생각에 가차 없이 코웃음을 쳤다. "야, 서른이 아니라 서른일곱 살이 돼도 여전히 애야." 아직 서른일곱까지 살아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10대 20대에는 세상이 내게 주입한 것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소화하느라 바빴다. 부모님의 영향 하에 있었으므로 그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분리해 한 사람 분으로 독립하느라 온 에너지를 다 썼다. 26세 무렵에 물리적으로 부모님 영향 권에서 벗어났지만 정신으로 연결되어 있던 탯줄을 자른 건 서른이 되어서였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아직 영아인 셈이니 서른일곱이면 겨우 유치원생 아니겠는가.
어린애가 키 클 때마다 빗금을 그어 기념하듯 글로 차곡차곡 빗금을 그었다. 날마다 자라는 키만큼 날마다 감정이며 사고의 결이 조금씩 바뀌어 당혹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포착된 그 순간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싶다. 갓 태어난 아이를 보살피듯 사랑으로 나를 키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