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은 겨울에 싹을 틔우지 않는다

by 푸르른도로시

도로가 정비되기 전, 외갓집에 갈 때마다 우리는 물 뱀 기어가듯 구불구불한 도로를 넘고 또 넘어야 했다. 우리 아빠가 ‘꼴짝’이라고 부르는 그곳에는 집집마다 대문이 없었다. 이웃 주민들은 전화 한 통 없이 찾아와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다 갔다. 그럴 때마다 우리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 과일이며 직접 담근 식혜, 밭에서 딴 옥수수 등을 한 상 가득 내놓으시곤 했다. 동네 어르신들은 한참을 떠들다 끼니때가 되어서야 일어나셨다. 그들의 세상에서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는 법이란 잘 먹고 잘 노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엄마에게 가끔 옛날 일을 물어봤다. 추수가 끝난 후에는 뭘 하며 살았는지, 어릴 때는 뭐 하며 지냈는지, 냉장고도 없었는데 밥은 어떻게 해 먹었는지가 궁금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어릴 때는 공부할 생각도 안 하고 매일 해 질 녘까지 팽팽 놀기만 했으며 냉장고가 없으니 반찬은 그때그때 해 먹었다고 했다. 엄마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추수가 끝난 후였는데, 다 같이 모여 김장을 해서 나눠 먹으며 종일 놀고,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새끼를 꼬며 또 종일 놀았다는 얘기가 아주 비현실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는 일은 분명 힘들었을 것이다. 효율적인 농기구가 발달되어 있지 않은 옛날에는 틀림없이 그랬을 거다.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한 뒤 찾아온 겨울에는 매일 밥 해 먹고 집안일하고 쉬고 그렇게 지냈다고 했다. 엄마의 추억 보정이 들어간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그 이야기는 꽤 인상 깊었다. 성실히 일한 뒤 마음 놓고 쉬는 겨울이라. 스스로의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감에 쉴 때조차 마음이 편치 않은 게 현대인이 아닌가. 세상이 이 꼴이 된 지 겨우 반백 년도 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달리는 현대인의 생활 방식이 실은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근래에 나타난 비정상적인 현상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다 성실히 일 하며 사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세상에는 젊은 백수가 많다. 그들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쪽수가 적어서가 아니라 단지 떳떳하지 못한 이름이라 여기기 때문일 뿐이다. 젊은 백수란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에서 멀어도 한참은 먼 이름이므로 모두가 보란 듯이 정체를 숨기기 바쁘다. 조금의 공백도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나이 어린 백수는 마땅히 해야 할 몫을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인간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현대의 노동은 참 이상하다. 먹고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하지만 먹을 음식을 직접 구하는 일, 입을 옷을 직접 짓는 일과 그 음식과 옷을 사기 위해 하는 일 사이에는 백만 광년 정도의 거리감이 있다. 폰 계좌에 찍힌 금액이 송금 버튼을 누르자마자 사라지는 걸 보고 있노라면 돈이란 그저 신기루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이처럼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노동’처럼 젊은 백수라는 이름도 도처에 널려 있지만 아무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말하는 어떤 신문 기사에나 나올 법한 '현상'이다.


언제까지 백수가 볼드모트와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사정이 어떻든 기왕 하는 일이 없다면 마음 편하게 놀고먹으면 안 되는 걸까? 농번기를 지나 추수 후 김장을 하고 새끼를 꼬며 겨울을 났던 농촌 사람들처럼 백수 기간도 각자의 인생에 다가올 봄을 위한 준비 기간이 되어선 안 되는 걸까?


겨우내 땅이 얼어붙어 농사를 짓지 못하듯 사람의 인생에도 하는 수 없이 쉬어가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바람이 차고 땅이 얼었는데 씨앗더러 싹을 틔우라고 하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땅 속에서 가만히 놀고 있는 듯 보여도 나름대로는 때를 기다리며 힘을 끌어 모으고 있을 것이다. 때가 되어 튼튼한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잘 놀고 잘 먹으면서 다가올 봄에 땅을 뚫고 솟아오를 힘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봄이 오는 시기란 다 다르게 마련이다.

keyword
이전 12화중요한 건 노동의 형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