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노동의 형태가 아니다

by 푸르른도로시



나는 스스로의 간헐적 백수 생활을 두고 ‘간헐적으로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이라 이름 붙였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겠다는 결심 같은 게 서서라기보다는 여태까지 해 온 노동 형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당장 1초 후의 일도 어찌 될지 모르는데 앞으로 어떤 형태의 노동을 하게 될지 어찌 장담할 수 있을까.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정규직 취직을 해 그동안의 세월이 무색하게도 한자리에 꼭 붙어 있을 수도 있고 뜬금없이 일벌레가 되어 하루 바람 잘 날 없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반면에 평생을 지금처럼 살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아예 백수로 눌어붙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노동의 형태가 아니라 현재 자기 삶의 흐름에 맞는 일의 방식을 택하는 거라 생각한다. 때로는 그것이 백수의 형태일 수도 있다.


일하든 하지 않든, 이 일을 하던 저 일을 하던 자기 몸 하나 잘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감히 선언하고 싶다. 출근길에 차에 치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자금 상황이 어떻든 간에 목숨부터 건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보기엔 견딜 만한 일이라 할지라도 당장 내 목에 올가미가 채워져 있다면 과감히 벗겨내고 탈출하는 게 맞다.


오랜 세월 동양 철학의 큰 줄기를 이루었던 명리학에 따르면 사람의 인생에는 운의 흐름이 있다고 한다. 대운과 세운으로 불리는 이 운의 굴곡은 사람의 일생에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 유리한 흐름이 올 때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일이 술술 잘 풀리다가도 반대 상황이 되면 아무리 애써도 되는 일이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숙명론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사실 우리 조상들은 명리학을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다. 운기를 살펴 몸을 납작 엎드려야 할 때와 순풍을 타고 훨훨 날아야 할 때를 예측해 말 그대로 ‘흐름을 타며’ 살기 위해 명리학을 이용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난 10년간 간헐적 파트타이머의 삶을 살았던 건 운의 흐름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기 힘든 방향으로 흘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해두고 싶다. 노력만으로 풀리지 않는 일이란 봄 날의 미세 먼지 만큼이나 널리고 널렸다. 혹은 노력할 힘이 없거나 그럴 상황이 안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느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지 몰라서 분명 힘을 쏟긴 했는데 한 만큼의 결과가 안 나오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나침반과 지도를 가지고 길을 떠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맨 땅에 헤딩하듯 자갈길을 맨발로 걸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열심히 노력해서 운명을 개척했나 했더니 갑자기 불어온 태풍에 평생 지은 집이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그저 태어났을 뿐인데 만인이 부러워할 모든 자질을 다 갖추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노력’이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노력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쉽게 쓰이는 현상을 경계하며, 심지어는 노력이란 걸 할 수 있는 상황이나 자질조차도 대부분 운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허무주의 회피형 인간의 헛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자신의 몸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스스로 선택해서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인간은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연히 부모가 살던 동네에 있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유치원에 입학하여 우연히 '그' 선생님과 '그' 친구들을 만난다. 숱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최선을 택하려고 매 순간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노력이 나를 원하는 목적지로 데려다 줄지는 순전히 운에 달렸다.








종종 이 세상이 얼마나 많은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생각하다가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있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명체부터 시작해 과거에 벌어졌던 일들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휴화산처럼 아무도 모르게 언젠가 터질 날 만을 기다리며 숫자를 세고 있을 비밀스러운 일 등이 제각기 자기 운기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생각하면, 결국 한 인간이 태어나고 자라서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지하철을 타거나 걸어서 직장에 가는 일상 자체가 엄청난 기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애초에 무엇 하나 뜻대로 들고나올 수 없는 삶에서 사람들 간의 우열을 가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미약하기 짝이 없는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현재 내 삶이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지를 잘 가늠해 필요한 장비를 챙겨 한 몸 잘 건사하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지치면 뗏목 위에 몸을 뉘여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러다 힘이 나면 또다시 힘차게 노를 저으면 그만이다. 가끔 같은 물살을 타고 가는 사람들을 만나면 손을 흔들기도 하면서, 때로는 힘을 합쳐 더 튼튼한 배를 만들어 함께 가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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