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삶은 조합을 만들기 힘들 정도로 그 형태가 다양하다. 때문에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전혀 공감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동시에 어느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므로 다년간의 간헐적 백수 생활로 얻은 백수 생활 즐기는 법을 방출하도록 하겠다.
본격적인 팁 방출에 앞서서 백수의 특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다. 사람마다 각양각색이겠지만, 나의 경우 간헐적으로 백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자체를 특권에 가까운 행운이라 여겼다. 견적서를 두드려보면 부모님이 건재하시고 집안에 빚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은 널을 뛰어도 몸은 건강한 축에 속하니 그야말로 운이 좋은 셈이었다. 그 밖에 가장 두드러진 특권은 역시 ‘시간’이다. 백수는 돈이 없을지언정 시간만은 많다. 나는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취업의 문을 두들기지 않는 간헐적 노동자였으므로 여러모로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를 수 있으나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는 거의 모든 백수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소속된 곳이 없는 백수로 살면서 최대한 돈을 아끼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산책을 한다.
학창 시절, 슬픈 마음이 들 때면 집과도 학교와도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아는 사람과 마주치지 않을 정도로 멀리 걸어 가다보면 어느새 한결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강을 따라 걸으며 무리 지어 노는 오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눈으로 좇으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슬픔의 근원지에서 멀어져 자연을 바라보는 일이 마음을 환기 시켰던 것 같다. 그 시절 거의 매일 같이 몇 시간이고 나섰던 산책이 항우울제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산책에는 수많은 이점이 있다. 운동 효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신에도 좋은 영향을 준다. 수시로 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걷노라면 마음속을 어지럽히던 문제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다보면 제 3자의 눈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살필 틈이 생겨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게 되기도 한다.
나는 이제껏 몇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근처에 산책로가 있는 곳에 살았다.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에 커다란 강이 있어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애용했고, 독립 후에도 일부러 산책하기 좋은 장소를 찾아 살 집을 골랐다.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가득한 나에게 산책은 날뛰는 정신을 다독일 유일무이한 해법이었기 때문이다.
각종 공원, 강변, 대학교 캠퍼스 등 다양한 곳에서 산책을 즐겼다. 멍 때리다가 차에 치일 염려 없이 걸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좋지만 개인적으로 빙글빙글 한 곳을 돌아야 하는 작은 공원 보다는 변하는 풍경을 따라 쭉 걸을 수 있는 곳을 선호했다. 대체로 강변 공원들이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대낮에 강변을 따라 걷고 있노라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거나 중년인 여성,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 강아지를 끌고 온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나와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마치 스스로가 희귀한 포켓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주로 흘러가는 물과 구름을 감상하며 길을 걷곤 하는데, 날씨에 따라 매일 모양이며 흐르는 속도가 달라지는 구름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걷는 일의 가장 큰 이점은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심장이 뛰는 작은 동물로 살아가는 일의 기쁨을 알게 해주므로 백수가 빠지기 쉬운 자학을 예방해 주는 효과가 있다.
만약 사는 곳 근처에 자연이 가득한 공원이 없다면 다른 동네로 넘어가 보는 것도 좋다. 평소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풍경을 목도하면 기분이 환기될뿐더러 마치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여행을 간 셈이니 일석이조다.
산책하기 제일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이나 낮이다. 안타깝게도 타고난 야행성이라 아침 산책을 해본 적이 별로 없지만 간혹 기회가 생겨 할 때마다 다른 시간대에 느낄 수 없었던 충만함을 만끽하곤 했다. 이른 아침이 좋은 이유는 우선 그 시간대가 주는 특유의 생동감 때문이다. 하루가 막 시작된 시점의 맑은 기운과 더불어 나보다 먼저 나와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부지런한 모습을 보면서 기분 좋은 설렘을 느낄 수 있다.
이른 오후 역시 산책하며 기운을 얻기에 좋은 시간대이다. 여름을 제외 하면 봄, 가을, 겨울 모두 낮 산책에서 양의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특히 온 사방이 앙상한 겨울에 낮 산책은 필수다. 이때 적당히 춥게 느껴지는 옷을 입는 것이 좋다. 걷다 보면 저절로 체온이 올라가기 때문에 어느새 온도가 적당히 맞춰지게 마련이므로. 겨울에는 안 그래도 산책 나온 사람이 적은데 밤에 나가면 혼자 어두운 곳에서 걷게 될 위험이 있으므로 더더욱 낮 산책을 추천한다. 아무리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도 은은한 태양 아래 걷고 있노라면 서서히 데워지는 몸과 함께 마음속에도 훈풍이 불 것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심신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산책이야 말로 백수의 특권이자 백수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 있다.
2. 도서관을 이용한다.
돈 안들이고 시간을 알차게 쓸 수 있는 방법 중에 도서관 출입만한 게 없다. 우선 도서관은 공짜다. 도서관 회원증만 만들어 놓으면 일일이 사서 보기엔 부담스러운 책들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도서관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자극이 되는 면도 있다. 아마도 도서관만큼 열혈 백수들이 넘쳐나는 공간도 없을 것이다. 동료들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도서관은 분명 정신 건강에 이롭다.
게다가 도서관에서는 시시때때로 무료 교육 프로그램 수강생을 모집한다. 외국어, 공예, 글쓰기, 인문학 등 양질의 콘텐츠를 교재비 정도 값만 지불하면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간혹 자격증 과정을 운영하기도 하니 기회만 잘 잡으면 새로운 커리어로 향하는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다만 여느 공공장소가 그렇듯이 색다른 종교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 유혹의 손길을 뻗어 올 수 있으므로 약간은 긴장하는 것이 좋다.
그 밖에도 도서관에 따라 전시, 독서모임,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도 하므로 도서관 홈페이지를 수시로 들락거리며 재미와 교양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를 권한다.
3. 스터디 모임을 한다.
공부는 하고 싶은데 학원 갈 돈이 없다면 스터디 모임을 추천한다. 자기가 만들어서 운영해도 좋고 이미 있는 곳에 들어가도 좋다. 나는 영어 회화를 익히고 싶어서 모임을 만들어 주말마다 영어 공부를 한다. 멤버들이 직접 교재를 선정해 2시간을 영어로만 대화 하는데 머리를 쥐어짜며 문장을 만들고 각자가 알아낸 표현을 공유하며 배우고 익히는 일이 즐겁다.
요즘엔 SNS나 네이버 밴드 등을 통해서 멤버를 구하기도 쉬우니 이왕 시간 부자가 된 김에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면 좋지 않을까.
4. 친구를 집으로 초대한다.
백수가 되어 가장 괴로운 것 중 하나를 꼽자면 친구들과 마음껏 먹고 놀기 힘들다는 점일 거다. 물가가 올라 밥값이며 찻값이 어찌나 비싼지 한 번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만큼 좋은 대안이 없다. 음식 준비며 집안 청소가 아주 귀찮긴 하지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하겠는가. 통장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외출은 최대한 삼가야 하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는 간혹 청소를 하기 위해 일부러 친구들을 초대하곤 한다. 더러움에 대한 기준치가 아주 낮은데다 극도로 청소를 귀찮아하는 탓에 의무감이 없으면 절대 집안에 손을 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구들은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어차피 끼리끼리 만나기 때문에 대충 청소해도 된다. 정말 대청소를 해야겠다 싶을 때는 부모님을 초대한다. 깔끔하기 짝이 없는 그들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하지 않으려면 내 기준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쓸고 닦아야 한다. 그래야 겨우 합격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나 부모님을 초대하면 밥을 그리 잘해야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요리 못하는 거 다 알기 때문에 대단한 걸 바라지 않는다. 된장에 계란 프라이, 김치와 땅콩 조림 등 밑반찬 몇 개만 있으면 모두가 맛있게 먹는다. 거기에 크래커 위에 치즈와 과일을 얹은 후식과 선물 받은 차를 대접하면 끝이다. 친구들도 보통 빈손으로 오지 않기 때문에 누군가 가져온 롤 케잌 정도를 곁들이면 밖에서 하는 식사가 부럽지 않다.
집에서 만나면 밖에서 만나서 하기 힘든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다. 보드 게임이나 댄스 파티가 대표적인 예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춤을 추거나 게임을 즐기거나 혹은 그림을 그리며 다양한 방법으로 놀 수 있다. 하루 종일 죽치고 있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도 편하다. 그러다 장소를 바꾸고 싶으면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면 된다.
돈도 얼마 안 들고 원하는 방식대로 즐길 수 있으니 참 좋지 않은가. 게다가 나같이 게으른 사람에게는 강제 청소의 기회도 제공하니 집 안이 너무 더러워졌다 싶으면 한 번씩 벌여 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