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친절한 엘(El) 씨

by 두런두런

내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공감 반응이 잘 설정되어 있다.

가끔은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있거나, 택배 배송 시간대와 겹치게 되면 층마다 정지하면서 조금 늦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가 있다.

그때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에 타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라는 안내멘트가 나온다. 아마도 버튼을 누른 후 몇 초 지나면, 설정되어 있는 것 같다.

나는 속으로 씨익 웃으며, 승강기를 기다린 시간이 길어야 20여 초 남짓인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는 멘트에 이런저런 상념이 떠오른다.


2분도, 2시간도, 2일도, 2개월도, 2년도, 20년도....

더 기다려 온 내 인생의 수 많았던 기다림 중에서 나에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인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반면에 단 20여 초를 기다렸을 때는 너무나 공손하게 '오래 기다리셨습니다'라며 슬며시 건네는 미안한 마음을 미소로 받는다.

급기야, 엘리베이터에 혼자 탔을 때는 혼잣말로 그 멘트에 대답까지 한 적도 있다.


응~ 오래 기다렸어. 빨리 오지 ㅎㅎ

혹은,


아니야, 금방 오던데?,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ㅎㅎ

혼잣말이 우스워 보일지 몰라도, 네모난 직육면체 철통 안에서 다정한 온기(위로)를 느낀다.


제멋대로 나의 시간을 차지하거나, 훼방하거나, 멈춰 서 있게 하고도 미안하다는 한마디 없이 모른 척했던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 정중한 인사이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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