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야생차 박물관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의 이유

by 도리

사실 너울과 내가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하동에 온 것은 아니었다. 차를 좋아하는 너울이 지난봄 하동을 다녀와서는 너무 좋았다고 얘기했고, 마침 내가 한국 가는 시기에 너울의 시간이 맞아서 함께한 여행이었다.


너울은 내가 잠시 미국에 살았을 때도, 인도네시아에 온 후에도 마침 일이 생겼다며 나를 만나러 와주었다. 같이 서울에 있었을 때도 마침 떡볶이가 같이 먹고 싶었다며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도시에 살 때와 달리 삶의 터전을 옮길 때마다 ‘마침’ 일정이 맞아서 내 생활을 공유할 수 있게 된 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너무 애쓰지 않으면서도 기회가 생기면 만나기 위해 서로 주고받는 노력이 있었기에 함께하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렇다고 우리가 꼭 필요한 순간에 항상 서로의 옆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너울의 옆에 가장 있어주고 싶었을 때 나는 이제 막 미국에 정착 중이었고, 뒤늦게 너울이 내가 미국을 떠날 때쯤 왔을 때에야 지난 시간의 안부를 물을 수 있었다.


반대로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적응을 어려워할 때 너울은 시간을 정해서 서로의 안부를 묻자고 했다. 우린 매일 아침 자카르타 6시 30분, 서울 8시 30분에 화상으로 만났다. 어떤 날은 30분간 각자 책만 읽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한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시간을 꾸준히 이어갔다.


이제는 각자의 일상이 안정되면서 횟수가 일주일에 한두 번으로 줄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꾸준히 온라인으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거의 1년 만에 오프라인에서 다시 만난 것이 바로 이번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둘만의 여행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여행은 기대와 달랐다. 평면적인 화면 속에서 둘만 바라보던 화상전화와는 달리, 하동에서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만남들은 우리의 시간을 단순히 ‘둘만의 여행’이 아닌, 하동이라는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3차원의 입체적인 경험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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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만남


그렇게 첫 코스였던 하동 야생차 체험센터의 티 소믈리에 선생님, 다음 코스의 야생차 박물관에서 만난 지기에 이어 차 판매장의 직원이 자기의 언어로 우리에게 하동을 소개했다. 차 판매장은 다양한 제다의 차와 다기, 공방의 소품들을 찾을 수 있었다. 다양한 다기와 차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나는 차 시음 시 맛있었던 생강홍차와 호지차, 시음해보고 싶은 ‘봄내음’이라는 차를 골랐다.


어떤 생강홍차를 살지 고민하자 직원이 말했다.


“이 제다의 차는 생강의 향이 더 진하고 저 제다의 차는 생강향이 더 부드러워요. 시음회에서 부드러운 차를 시음해 보셨으니 진한 생강차를 한 번 시음해 보시겠어요?”

직원은 아주 자연스럽게 세 명의 다기를 꺼내더니 물을 끓이고 차를 우렸다. 에피소드 티 다도 수업 때 실컷 차를 마셨는데도 차는 부드럽게 넘어갔다. 너울과 나는 직원과 마주 보고 앉아 차를 홀짝거렸다.


“이 근처에 추천해 주실 만한 식당이 있나요? 재첩국은 어디가 맛있어요? 오후에는 어딜 가보면 좋을까요?”

너울의 물음에 직원은 술술 가볼 만한 곳과 식당을 알려주었다.


“쌍계사 가보셨으면 화엄사를 가보세요. 구례에서 저녁 식사를 해도 좋고요.”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먼저 요청하지 않았고 계획에도 없었지만 차를 권하고 차를 함께 마시는 자리. 차가 목으로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우리는 직원의 추천을 받으며 그 자리에서 점심을 먹을 식당과 오후에 갈 곳을 정했다. 생각지도 못한 소득이었다.


“편하게 더 우려서 드세요.”

너울과 나는 점심때가 훌쩍 지났는데도 배고픔을 잊고 잠시 더 차를 즐겼다. 그저 차를 사기 위해 들렀던 가게에서 차와 여행의 다른 매력을 맛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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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판매장에서 시음 후 구매한 차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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