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와 토지마을

다른 시선일 때 보이는 것들

by 도리

날 저녁 구례역에 너울을 바래다준 후, 훈과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동여행의 두 번째 장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온 김에 아이들에게도 도시를 벗어나 한국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미리 계획한 여행이었다. 또 하동에 와보니 1박 2일뿐이었으면 많이 아쉬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부산스럽게 우리를 깨웠고, 첫 일정은 화개장터였다. 월요일 아침이어서 그런지 시장은 한산했다. 우리는 순대국밥을 먹으러 갔다. 어제저녁도 너울과 마지막 저녁 식사로 다슬기 무침을 맛있게 먹은 터라 아침에 배가 많이 고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국물을 한 숟갈 떠먹은 순간 허기지면서 따뜻한 국물이 속을 채웠다. 콩나물이 들어가서 국물맛이 시원했고, 부족함 없는 깔끔한 맛이었다.


해외에서도 이젠 순대국밥을 먹을 수 있지만 이렇게 묵직하면서 깔끔한 맛은 찾기가 힘들다. 옛날 순대는 순대피가 막창이어서 쫄깃했다. 나와 훈은 연신 감탄하며 국물까지 싹싹 비웠다. 우리 둘 다 한국에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 중 하나였던 터라 아침부터 든든히 먹을 수 있었다.


이전에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읽은 적이 있다. 흥미로운 내용도, 배경지식 없이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도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질학과 광물에 관심이 많았던 괴테는 돌멩이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서술했으면서 식사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쓸 때도 음식에 대한 내용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래서 읽으면서 식사를 했다는데 왜 음식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하고 의문을 가졌던 기억이 있다.


아마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밥은 먹었어’로 안부를 묻는 한국인들과 괴테는 전혀 다른 문화권과 시대의 사람이니까 말이다. 하동 여행기를 쓰기로 결심하고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문이 생각이 났지만 나는 음식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다.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맛에 대한 갈증이 한몫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침에 순대국밥을 먹은 그 순간이 너무 즐겁고 만족스러워서 밥 한 끼가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식사 후 우리는 토지마을로 갔다. 전날 너울과 이미 다녀온 곳이었지만 아이들이 예스러운 한국 마을을 보는 걸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얘들아 이리로 와봐, 이거 먹으면서 가. 나중에 내려올 때 엄마랑 들러.”

아이들과 함께 토지마을로 오르니 마을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 사장님들이 곶감과 메밀 과자를 한 움큼씩 안겨주셨다. 너울과 둘이 갔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인데 생각보다 가게가 꽤 많았다. 메밀과자를 찬에게서 받아 하나 먹어보니 고소한 메밀향과 바삭한 칩이 꽤나 맛있어 내려가면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지붕이 나뭇가지예요?”

“저건 왜 매달아 놓은 거예요?

“여긴 뭘 넣는 거예요?”

예상한 대로 아이들은 토지마을을 좋아했다. 그리고 전날 왔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처마에 걸어놓은 옥수수와 목화솜이라던지, 아니면 잘 정돈된 농기구라던지. 소품 하나하나도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신발 벗는 것을 귀찮아하거나 발 시려하지 않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다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그런 마당도 청소를 주기적으로 하는지 깨끗했다.


이렇게 두 번째 방문에서는 마을을 더 구석구석 다녀볼 수 있었다. 아이들은 마을 위쪽에 있는 한옥호텔도 담벼락만 보면서도 좋아했다. 예전 사람들은 이런 집에 살았다고 하니 신기해한 것 같다. 내가 가장 크게 감명받았던 것과 달리 아이들이 제일 관심이 없었던 곳은 박경리문학관이었다. 아마 좀 더 크면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문학에 대한 내 애정을 공유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아이들은 문학관 앞에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곳에서 한참 오르락내리락하며 놀았다. 나와 훈은 악양평야가 내려다보이는 벤치에 앉아 숨을 돌렸다. 악양평야는 여전히 멋있었다.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데도 햇빛에 비치는 초록빛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평야는 어딘가 경건한 느낌도 있었다. 크기나 규모로는 요세미티 계곡과 비교도 안되게 나지막하고 단조로운 곳이지만 작은 산으로 둘러싸인 논밭이 요세미티 못지않게 장엄하고 풍요로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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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의 닭장과 붉은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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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구석구석 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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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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