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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Jul 28. 2022

여름을 사랑해 보려 해


 나는 사실 여름을 좋아하지 않지만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여름에는 무더위에 대한 짜증보다는 능소화가 아름답게 넝쿨지어 있다. 끈적거리는 땀과 습한 날씨를 이길  있는  엄청난 사랑이지 않을까? <한여름 손잡기> 시집의 제목을 처음에 듣고 정말  지었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관한 시로 가득한  시집의 제목이 한여름 손잡기라니. 너무나 사랑 같지 않나. 사귀던 사람과 31도의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서로의 손을 놓지 않고 걷기만  적이 있는데, 종종 그때만큼은 진짜 사랑 같다고 생각했다. 축축 처지는 습한 날씨와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든 뙤약볕에도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그것들을 견딜  있는 여름에만   있는 사랑이 있다. 물속을 걷는 느낌인 요즘의 날씨를 견디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언이 듣고 싶어졌다. 그러면 나도 조금은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나 슬픈 6월이 다 끝나가고 다가오는 7월에는 조금 덜 아프고 싶어서.



나는 여름마다 아팠다. 사실 모든 계절에 각기 다른 이유로 힘들 수밖에 없지만, 여름에는 소중하게 여기던 시절과 작별해야 했고 그 감정과 시절을 잘 떠나보냈을 때 비로소 가을이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초가을을 좋아한다.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음에도 탈피가 가능해진다. 낡아진 마음의 허물이 조금씩 벗겨지기 시작하고 이제 덜 아플 수 있겠구나, 하면서 가을을 맞이했다. 가을을 기다리기에는 아직 하지가 지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여름의 저주는 아주 사소한 것들로도 자주 풀리기도 했으니. 여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기로, 더 믿어보기로 생각했다.


우선 이번 여름에 가장 기대하는 


1. 3 만에 열리는 퀴퍼 

2. 썸머 필름을 타고 한국 개봉

3. 얼결에 가기로  부산 여행

4. 화이트 와인과 소금에 절인 오이를 마음껏 먹기 


야근을 하는데 담배를 피우고 싶어서 잠깐 나갔다가 비를 쫄딱 맞고 여름 죽어를 외쳤다. 그리고 일하기 싫어서 사부작사부작 글을 쓴다. 시를 조금 썼고 서한나 님의 글을 읽고 여름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지금만큼은 일하는 거를 제외하고는  재밌다. 요즘 나는 정말 일만 하고 있다. 지금은 책을 팔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만들고 싶어. 지금도 조금씩 기획에 참여하게 될 때마다 정말 기쁘다. 책을 이야기하는 곳에서 일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정말 퇴근하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며칠 째 야근인지 셀 수가 없어서 나의 저녁을 보내고 싶어. 여름의 특권인 환한 저녁을 걷고, 걷고 싶다. 



슬픔에만 잠겨있고 싶지 않아서 최대한의 다정함을 생각한다. 속이 더부룩한 탓에 숨이  쉬어지지 않지만 이것들과  다정하게 살아남는 법을 골몰한다. 최대한의 나로서 여름을 지나가는 방법. 지난여름은 망했지만 이번 여름을 이겨내는 방법. 망했다고 여긴  중에서도 가장 반짝이는 것들은 어떤 미사여구 없이 남겨두기.


2022.06

instagram. @muff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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