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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ffyeon Jul 27. 2022

2022년 7월 5일


나약함에 입을 대고 싶었다. 아물어지지 않을 거야, 완전해지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거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옮아줄게, 아픔을. 사랑 대신 절망이 되어볼게, 그런 농담을 하면서. 왼팔에 뻗어 난 가지에 손을 얹었다. 나무가 되어 가는 중이구나.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질 때면 나무에 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나무는 나무를 생각하지만 인간은 인간을 생각하지 않지. 썩어버린 나무를 살리기 위해 썩지 않은 나무는 보이지 않는 뿌리를 통해 영양분을 전달한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사랑 같은 사실. 나는 나무를 생각하고 나무는 나무를 생각한다.

나무는 인간을 생각하지 않기에 더욱 생생해질  있다.

그게 좋다.


요즘은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연애가 아닌 사랑을 했다,라고 생각하면 슬픔이 덜해진다. 불가항력적인 감정을 연애와 묶어버리면 어지럽다. 오히려 나는 연애에 취약한 사람이 아닐까? 연애라고 명명하기 전에는 더 자유롭게 슬플 수 있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알기에 더 자유롭게 슬플 수 있었고 더 자유롭게 마음을 부풀릴 수 있었다. 나의 사랑과 나의 고통을 네가 다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이 생기기 전까지는, 견뎌질 만했다.



누군가는 연애를 하면서 사랑을 하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하면서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 나는 사랑을 하면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차라리 내 안의 사랑을 다 버리고 싶어 하면서도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사랑에 가까운 모습을 갈망하기. 그 사이에서 깎이고 점점 사라지는 건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시인의 말도 생각나고 사랑이 자신의 특기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시인의 모습이 생각난다. 사랑이 주특기가 될 때까지 얼마만큼의 슬픔이 필요한 걸까.



나는 나를 생각해야 나무가   있다고 중얼거렸다.


나무가 되고 싶다.


요즘의 나는 그렇다.


​​

일기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시인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내 일기는 무엇이고 될 수 없으니까. 나의 일기는 중얼거림에서 멈춰야 한다. 나의 일기는 외침이 될 수 없다. 그렇게 단정 지었다. 흩어져서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산산조각 나고 피로 물들고 엉망이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어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톱에 가장 빨간색으로 칠했다. 일을 하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손톱의 색이 얼핏 보이는 게 좋다. 얼핏 보이는 게 빨간색이라 좋다. 이렇게라도 무언가를 가려낼 수 있다면.


시가 되지 못한 것은 일기가 되고 일기가 되지 못한 것은 시가 된다. 마음을 제대로 담지 못한 탓이다. 헛도는 마음을 정돈된 문장으로 어르고 달래면 다정한 글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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