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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손락천 Dec 28. 2016

사랑은 그런 것이더군

연작시

동대구로에 서서 히말라야시다 끝에 걸린 투명한 하늘을 쳐다본다. 싸늘한 바람이 코끝을 찡하고 울린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툼을 피하면서 살아왔다. 나는 보잘 것 없는 덩치와 외모, 그리고 가난한 집안형편에 자조하였고, 그래서 으레 큰소리가 나면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이겨내겠다는 생각 없이 비겁하게 물러서기만 했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겨울하늘처럼 차갑고 투명한 인간이 되어 왔고, 곁을 나와 같은 색깔로 물들여 왔는지도 모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가급적이면 무관심하였고, 그러한 무관심을 주위에 전염시켜 모두가 서로를 원망하며 상처 입은 은둔자가 되도록 말이다. 그렇게 살던 중 그녀를 만났다. 나는 내게서 진심을 읽었고, 내 수줍음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것은 내 하찮음에 대한 최초의 거부였다. 그리고 그러한 거부는 나와 그녀에게 지금까지 곱씹는 화두가 되었다.




#1        


사랑은 구름같은 것이더군    


서로 가벼우면

깃털처럼 떠올라

새하얗게 바스라지고    


서로 무거우면

먹물처럼 내려앉아

속없이 쏟아지더군    


사랑은 줄다리기같은 것이더군    


설익은 두 마음

울며 웃으며

씨름하다가    


슬며시 한손 놓치면

나 무너진 만큼

너 또한 허물어지는 것이더군




#2

        

사랑은 바람같은 것이더군    


보이지 않지만

펄럭펄럭 들이쳐

온 몸을 때리고    


힘겨워 숨으면

쉬익쉬익 소리내어

"비겁하게 피하지마라" 성내는 것이더군    


사랑은 편지같은 것이더군    


멀리 떨어져

목메인 그리움에

컥컥거리지만    


밥은 먹었는지

사는 것은 어떤지

격한 마음으로 마주하는 것이더군    




#4        


사랑은 새싹들의 수다 같은 것이더군    


푸릇한

봄날     


수줍게 피어난

떡잎 두 개    


부끄러워

말은 못해도    


산들바람에 간지럼 태우며

밤새도록 들녘을 술렁이더군    


사랑은 군불 같은 것이더군    


한 톨 불씨

사그라질 때까지    


너는 항상

환하고 따사롭더니    


너 떠나간 후에도

온기 남아    

밤새도록 어르며

포근히 안아주더군


- 손락천 문집 [가깝거나 아주 짧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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