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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손락천 Mar 28. 2017

꺾여야 할 것

고집

 갈릴레이가 권력에 굴복하면서도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것처럼 사람의 고집은 꺾이지 않는다.



  머리가 희끗하고서야 고집들이 꺾인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꺾인 고집들 위에 다른 고집들이 다시 핀다는 것이다. 결국 모양을 달리 하지만 고집은 여전한 셈이다.


  생각하면,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결국 사람은 고집의 존재다. 뜻을 꺾을지언정 고집을 꺾지 않으니 말이다.


  이태껏 상황이나 조건의 여의함 때문에 할 수 없이 고집을 꺾는 것은 보았지만, 내면의 고집 자체는 결코 포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갈릴레이가 권력에 굴복하면서도 결국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고집]이 있는 한, 사람에게 법이란 그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 것인가.



  법은 [물 수] 변에 [갈 거] 자를 쓴다. 물처럼 흐르는 것이 자연의, 그리고 사람의 법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고집]이 있는 한, 사람에게 사람의 법이란 지키기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역지사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해한다고 해서 용서되거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무마되는 것이 아니다. 비판하는 나는 비판받는 그와 같아서, 비판한 죄와 비판받을 만한 상태에 있는 죄를 동시에 저지른 것이 된다. 의도치 않은 깨달음이다.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는 것은 죄 없는 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입장이 바뀌더라도 그렇게 하지 아니할 자를 뜻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의 유연함. 그것만이 [고집]을 꺾기 위한, 그리고 물처럼 흐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인 터다.


  지만 어리석게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불혹을 훌쩍 넘어버린, 그래서 한참 늦어버린 지금의 시점에서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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