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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손락천 Apr 20. 2017

술, 세월을 마시다

허튼소리

술은 에너지의 정수다.



 술은 음식의 이단아다.

     

 수많은 종류의 곡물과 과실을 있는 그대로 두지 않고 그가 가진 에너지의 정수만을 뽑아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술을 마시면 사람은 아주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이게 된다. 집적된 태양에너지를 그 정수대로 섭취하였으니, 마시고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한 호흡의 순간에 수많은 세월을 마신다는 것이다.



 에너지 불변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에너지는 흡수된 만큼 발산되는 것이다. 에너지는 종류를 달리해가며 흐르는 것인데, 그 파격이 바로 술이다.


 곡물이나 과실이 여물거나 수목이 자라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이것에서 추출한 주정을 마신다는 것은 한 호흡의 순간에 수개월 또는 십수 년의 세월을 마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많이 마시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토록 집적된 에너지를 마셨으니, 그것을 감당하고 발산하는데 얼마나 큰 무리가 가겠는가.




술에 무너지는 것은 세월에 무너지는 것이다.
술은 낭만에서 벗어난 순간 술이 술을 먹고, 세월이 세월을 먹게 된다.



 그러나 또 그토록 큰 유혹이 없으니, 도대체 무엇으로 한 호흡의 순간에 수개월 또는 십수 년의 세월을 마실 수 있을까?


 얼마 전 술을 진탕 마시고 몸을 가누지 못한 적이 있다. 기억 역시 없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몸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낭만을 벗어나 마셨기 때문이다.


 술에 무너지는 것은 세월에 무너지는 것이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세월의 거대한 즐거움과 괴로움이 덩어리 채 사람을 때리는 것이니, 낭만을 벗어난 시점부터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술이 술을 먹고, 세월이 세월을 먹게 된다.


 과한 것은 과한만큼 해롭다. 하여, 술은 낭만에서 그쳐야 한다. 조금 맛보고 조금 더 행복하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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