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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손락천 Jul 05. 2017

손락천, 이름 탓일까?

이름에 대한 이야기

내 이름은 손락천이다.


  이 이름을 한자로 적으면 손자 孫, 물 洛, 일천 千이 된다. 한자의 뜻으로만 보면 물이 천 개라는 뜻이지만, 도무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없고, 어른들로부터도 이름에 대하여 이렇다 할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그냥 대충 지은 이름이라는 반증이다.


  아주 어릴 때는 과학자를 꿈꾸었고, 조금 자라고 난 뒤에는 시인을 꿈꾸었다. 그러나 이름 탓일까? 생각이 천 갈래의 물처럼 갈라지는 통에 도무지 무엇 하나에 집중할 수 없었고, 그래서 아주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대충 지었지만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이름일 것이다.


  하여 한때는 대충대충 평범하게 살라고 이런 이름을 지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랬다면 진즉에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을 테니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희귀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태껏 나와 같은 이름을 본 적이 없다. 아마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이 이름을 가진 것은 내가 유일할지도 모른다.



이름에서 오는 감흥이 있다.


  사람은 모두 다 유일한 존재이지만, 이름마저 유일한 존재라는 것에서 오는 어떤 감흥이 있다. 생각하면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감흥인 것 같다. 그 감흥은 다름 아닌 생경함이다. 모든 일에 대하여 최악을 예정한 다음, 조금이라도 최악의 상태에서 벗어나면 마치 생소한, 전혀 의외의 결과인 것처럼 그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사람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고독감에 이름조차 동질감을 느낄 아무런 존재가 없다는 외로움이 더하여진 까닭일 테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생경함이 글에서 손을 못 떼도록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무엇이든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그 이유와 감정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익숙해져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설명하면, 그것에 대한 인상을 묶어 두고, 묶어 둔 인상에서 조금이라도 익숙한 동질감을 얻고자 하는 것일 테다.



알고 보니 그것이 글을 쓰는 이유였다.


  글을 쓰는 이유, 그리움이 많은 이유, 생각해보니 이름에서 비롯된 것인가 보다. 우습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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