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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Apr 27. 2023

정리는 어려워

정리로 유명해진 우르수스 베얼리라는 예술가가 있다. 이 사람은 옛 화가들의 유명한 작품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유명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검은 신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인 골콩드에 나오는 신사들을 크기 순으로 화면에 가지런히, 마치 잘 정돈된 시각자료와 같이 줄을 맞춰 정리해 놓았다. 또한 코미디언이기도 한 그는 쇼에 나와 점묘법으로 유명한 조르주 쇠라의 그림을 정리(tidying up)했다면서 비닐주머니에 색색의 구슬을 담아서 가지고 나왔다. 유쾌한 사람이라 인터넷에 이 사람을 한 번쯤 검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현대미술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사람의 작업물은 기발하고 참신해서 보다 보면 정신이 신선해지는 면이 분명 있다. 아무튼 유쾌한 아저씨다.


베얼리같이 퍼포먼스적으로 대단한 정리는 아니지만 살다 보면 큰 정리를 할 때가 있다. 바로 창고 정리다. 정리를 하다 보면 가끔 쓰지만 밀어 넣을 수 없는 것들이 문제인데(다들 그렇지 않으신지) 내가 그럴 때마다 애용하는 것은 조립식 선반이다. 인테리어적으로 멋있는 선반들이 많지만 내 선호는 어디까지나 투박하고 튼튼한 랙이다. 요즘은 물류 창고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견고한 랙들이 가볍고 깔끔한 디자인을 가진 제품들로 출시되고 있는데 아주 고마운 일이다. 보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이사 갈 때 편하다. 무거운 수납장 대신 랙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다.


랙 이야기 하니까 문득 든 생각인데 나는 어릴 적부터 창고를 좋아했다. 창고 안에 물건들이 종류별로 묵직하게 쌓여있는 모습이 왜 그렇게 마음에 들었는지. 창고와 나의 인연도 이상하게 질긴 편이라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재고 관리는 보통 내 담당이었고 군생활 때도 잠깐이지만 보급병으로 일한 적이 있다. 정리정돈을 잘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음.


그런데 창고를 관리하는 일은 간단한 정리정돈을 넘어서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비슬리(Bisley)의 광고에도 써져 있듯 정리는 단순히 깔끔함을 넘어 잘 조직된 상태를 이루려는 인간의 의지가 깃든 활동이 아닐까.  한눈에 알 수 있게, 필요한 것을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물품들을 정리해 놓는다. 적절한 연관성을 가지고 놓여있는 창고의 물건들은 그 창고와 연결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힌트를 준다. 세상의 조직도가 그려진달까. 어쩌면 창고가 구분하는 세계의 뒤편에서 이것저것 물품을 준비하는 동안 무언가 눈치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점이 일하는 내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리의 예술이 있을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예술(art)의 정리는 가능할까? 가끔은 엉뚱하게 뒤집어 질문하는 것이 오히려 더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진다. 마치 베얼리의 작업물처럼. 그의 작업물이 진지하지 못하다는 의견들이 있지만 나는 좋아한다. 그의 작업물을 보고 있으면 그가 ‘정리’ 하지 못할 그림은 없는 것 같다. 발상이 솔직하게 대단하다. 여기저기 퍼져 있으면서 단순히 밀어 넣을 수 없는 것들을 그가 정리한 방식처럼 창고에 넣어둘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정리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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