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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Apr 13. 2023

초코 우유를 마시며 소로를 생각하며

대기질이 좋지 않다. 공기가 탁해서 창문을 모두 닫고 대신 초코 우유와 소로를 준비했다. 날이 탁하니 정신이라도 맑게 하자 같은 거창한 동기는 아니다. 물론 소로를 읽는 것이 맑은 정신을 위해 딱이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나에게 소로는 날씨든 기분이든 무언가가 분명하지 않을 때 손에 잡히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초코 우유 마시기는 중요한 아침 일과 중 하나다.


공기청정기를 돌리면서 초코 우유에 빨대를 꽂았다. 빨대는 다들 좋아하시는지. 저는 좋아합니다. 빨대는 정말 잘 만든 발명품 중 하나다. 이렇게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팩에 꽂아서 먼지 걱정 없이 야외에서 초코 우유를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컵에 받아 마시는 것과 달리 적당한 속도로 걸으면서도 마실 수 있다. 오늘도 마실 것을 손에 들고 적당한 속도로 옥상에 올라가는 중이다. 그러면서 소로에 대해 생각한다. 소로는 삶의 정수를 남김없이 빨아먹으려고 숲에 들어갔다는데 음, 나는 옥상에서 초코 우유나 빨아먹고 있다. 삶이 초코 우유라면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털어버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떨지(아무래도 초코우유는 포기하지 못하겠다). 아침에 초코 우유를 매일같이 빨아대고 적당한 운동 후 커피 한잔과 함께 드로잉으로 시작해서 드로잉으로 끝나는 하루를 반복한다.


옥상에서 조용히 초코 우유를 마시면서 걷고, 소로와 마시기와 걷기에 대해 생각해 보는 하루는 무언가 특별하다. 특별할 것 없이 매일 그리고(일하고) 걷고 주로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 종일 그리다 보면 체력이 소모되고 당이 필요해서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마시는 편이 편하게 몸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많이 마시게 된다. 보통 하루 종일 무언가를 마시고 있다. 가끔 빨대를 쓰는데 빨대를 통한 마시기는 언제나 색다르다. 내가 마시는 것과의 간접적 교류. 의식하지 않고 빨대에 입을 가져간다. 의식하지 않는 사이 액체가 비밀스럽게 관을 타고 입으로 흘러서 퍼져 나간다. 액체가 몸에 서서히 스며들어간다. 마신다는 행위가 의식 없이 작업에 스며든다. 빨대가 주는 선물이다.


빨대를 통해 무엇과 연결되는가 하는 문제는 언젠가부터 나에게 상당히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빨대를 발명한 사람들도 그것이 중요한 문제였을까 하는 문제 또한 나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관심사다. 빨대 하면 생각나는 전형적인 주름 빨대, 사실은 특허가 난 발명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193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였던 조셉 프리드먼은 딸이 종이 빨대를 이용해 힘들게 밀크 셰이크를 먹는 모습을 보고, 빨대에 주름을 만들어 편하게 먹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름 빨대를 만들어냈다. 참신한 아이디어다. 그리고 좋은 디자인이다. 분명 프리드먼은 빨대를 통해 딸과 그리고 딸과 보내는 시간과 충실히 연결되어 있었겠지. 프리드먼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점토판을 보면 두 명의 사람이 항아리에 든 맥주를 갈대 빨대로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맥주 윗부분과 아랫부분의 부유물과 찌꺼기를 걸러낼 수 없어 빨대로 중간 부분만 빨아 마셨다고 한다. 갈대 빨대로 마시면 정말 갈대 맛이 묻어 나올까. 인류 역사 속 첫 빨대를 생각하면서 빨대의 끝부분에 입을 댄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전에 마지막 한 모금을 남김없이 빨아먹는다. 빨대를 거쳐서 들어오는 초코 우유의 맛을 음미하는 내내 삶에서 무언가 불필요한 것들이 걸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빨대로 삶의 정수를 빨아먹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이러고 있으니 약간은 세상이 선명해진 기분이 든다. 분명 내 착각이겠지만(미세먼지가 걷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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