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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Apr 20. 2023

애매한 크로와상 이야기

빵을 식사로 많이 먹는 편이다. 단순히 빵을 좋아해서 그렇기도 한데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자주 먹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테이블 위에 빵이 놓여 있다. 빵 종류는 크로와상. 크로와상과 커피 한 잔. 좋지 않나요? 여유로운 아침에 어울리는 빵은, 많고 많은 빵들 중 왜 크로와상일까(크로와상의 둥글고 여유로운 모양 때문일까요). 오래된 의문이다.


나에게는 크로와상과 관련된 애매한 일화가 있다. 일본에서의 일이다. 펜팔을 통해 사귄 한 일본인 친구가 내가 도쿄 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자신 있게 자기가 일하는 빵집에 들르라고 했다. 빵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빵도 좋아하고 그 친구도 좋아해서 들른다고 했다(물론 맛있는 빵을 얻어먹을 심산도 있었다). 아무튼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여행 당일이 되어 비행기로 훌쩍 건너갔다. 둘째 날이었나, 도쿄의 도심을 둘러보다가 늦은 저녁 그 친구가 일하는 빵집으로 발을 옮겼다.


아주 애매한 만남이었다. 그도 그럴게 실제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였는데 빵집이 문을 닫은 애매한 밤 시간대에, 빵집 앞에 놓여 있었던 단 하나의 테이블을(작은 빵집이었다) 사이에 두고 앉아 빵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니. 그것도 애매한 일본어로. 테이블 위에는 그 친구가 직접 구운 크로와상이 놓여 있었고 우리는 애매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크로와상에 대한(정확히 말하면 그 친구가 구운 크로와상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수많은 빵들 중 크로와상은 보통 제빵사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 정도로 여겨지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단면을 잘라서 보았을 때 층이 뚜렷하게 나오는 좋은 크로와상은 기본기가 필요해서 잘 만들기가 쉽지 않아. 그래서 잘 만든 크로와상은 반갑고 언제 먹어도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준다고.


진정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말하던 그는 한동안 침묵을 이어가다가 크로와상이 왜 애매한 빵인지 설명해 주었다. 크로와상을 만들 때는 효모 발효와 함께 제과류인 페스츄리를 만들 때 들어가는 버터를 쓴다. 그런 점에서 주식용 빵도 아니고 디저트도 아닌 그런 애매모호한 빵이 크로와상이라고. 그렇기 때문에 지방함량이 높아 많이 먹기에 부담되는 이 크로와상을, 맛과 풍미는 유지하며 칼로리와 지방함량을 낮춰 일상적인 빵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자신의 꿈도 이야기해 주었다. 마침 초승달이 뜬 밤에 초승달 모양의 크로와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 친구의 명함은 방 한구석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자기는 언젠가 프랑스에서 빵을 굽고 있을 테니 나중에 연락하라고 했다. 애매모호한 빵이지만 그날의 크로와상은 맛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프랑스에서 보이는 크로와상 중 끝이 구부러진 초승달 모양의 크로와상은 마가린이 들어가 있다고 한다. 모양으로도 구분이 된다고.


그날 먹은 크로와상도 모양도 모양이지만 느껴지는 맛에서 식물성 재료를 썼었다고 생각되는데, 바게트는 바게트이고, 크로와상은 크로와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나로서는 애매한 빵은 애매하게 먹는 편이 좋은 것 같지만 그 친구의 꿈도 응원한다. 비건 크로와상(먹어보진 않았다)도 나오고 있는 요즘에 그 친구의 빵도 내가 모르는 새에 유명해져 있을지도. 애매한 크로와상만큼 세상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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