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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r 30. 2023

A군에게 보내는 편지

걷는 것을 좋아한다. 집 주변에 공원이 있어서 오늘도 오전의 가벼운 산책을 나갔다. 멍하니 있자니 아이들이 나와서 하나둘씩 무리 지어 놀기 시작한다. 날도 따뜻해서 보기가 좋다. 계절이 좋아졌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저 아이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현실은 그저 재밌게 놀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가겠지만, 비현실적으로 날이 좋은 날에는 자주 드는 생각이다.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집 주변이 아닌 낯선 동네에서 그런 생각을 하며 길을 걷다 보면 내가 미아가 될 때가 있다. 아주 가끔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서 보호자를 잃어버린 아이들을 만날 때도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길을 걷다 보면 사연 있는 존재들을 만나는 일이 많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에 한해서는, 멈추기-생각하기-도움 요청하기라는 미아 예방교육 프로세스를 잘 아는 아이라면 빠른 시간 내에 보호자가 도착하여 나도 갈 길을 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한참을 기다리게 된다.


아이와 함께 기다리는 시간은 잃어버림을 잊는 시간이다. 어린아이에게는 부모가 길이다. 그래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부모를 잃어버린 것과 같다. 보호자의 부재에 대한 잊어버림. 익숙지 않은 장난으로 아이의 기분을 달래주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이럴 때마다 먼저 세상에 나온 사람으로서 아무튼 최선을 다해 본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열심히 아이의 관심을 돌린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사정이 다릅니다.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이 있었다.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길을 잃어버렸다는 표현은 썩 좋은 표현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었지만 뚱한 표정. 어쩔 수 없지. 이 질문 또한 좋은 질문은 아니니까.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었다. 그리고 이상한 숙제를 좀 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횡단보도 걷기, 산책하기, 육교 걷기, 공터 돌아다니기, 길이 복잡하게 얽힌 동네 구경하기. 물리적인 길에 대한 실감을 하라고 내 준 과제였다. 그 학생이 수행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예전에 이런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길은 무엇일까.


벽돌로 담을 양 옆에 쌓으면 길이 된다. 결국 길도 공간의 일부다. 길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공간과 공간을 어떻게 이어주는지 잘 관찰하기를. 길의 모양, 그로부터 나오는 길의 표정, 계절감, 땅의 촉감 같은 것도 잘 느껴보기를. 중력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관념에까지 지배를 받지 않으려면 적어도 길은 자유로워야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부디 자유롭게 걸어보기를.


좋아하는 음악이 있습니까. 저는 요즘 ZARD의 음악을 다시 꺼내어 듣기 시작했습니다. 사카이 이즈미 씨의 투명한 목소리와 작사가답게 가사의 단어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는 노랫소리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가 ZARD의 음악을 찾아 듣는 가장 큰 이유는 꾸미지 않는 정직한 박자에 마치 어머니가 동화책 읽어주듯이 음 하나하나의 마음을 짚어주는 사카이 이즈미 씨의 노래가 저에게 무언가를 재확인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눈을 돌리고 잊어버리기보다 저희에게는 재확인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니까요. 무언가를 재확인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A군이 ‘아 내가 여기에 있어.’라고 실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나갔으면 좋겠네요.


계절감이 느껴지는 음악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ZARD의 음악을 듣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아직 ZARD를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신다면 계절을 중요시하는 사카이 이즈미 씨가 여름 하늘의 청명함을 비롯해서 주변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잘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아마도 앞에서 쓴 ZARD가 재확인시켜주는 무언가는 계절일 수도 있겠네요.


벚꽃이 피기 시작할 것입니다. 저는 A군이 산책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멋진 일로 이어질 수도 있구요. 저는 오늘도 길을 걷고 있습니다. 걷다가 뛰기도 하는데 ZARD 음악을 들으며 박자에 맞춰 발을 옮기면 그것만큼 근사한 경험도 없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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