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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r 07. 2023

커피를 생각하며 마시는 커피

커피 이야기를 해 보자. 커피를 하루에 몇 번 마시는지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 23살쯤부터 카페인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몸의 변화를 의식하며 살아가다가, 종이에 몇 번 마셨는지 바를 정(正) 자 쓰듯이 확실히 체크하며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3번 아니면 2번의 기회를 자신에게 쥐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 3번, 2번밖에 커피를 못 마신다는 이야기이다. 커피커피커피 또는 커피커피. 3과 2의 차이는 밖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있냐 없냐의 차이다. 물론 보통은 2번을 지키기 위해 카페에서 사람을 만날 때는 커피 외의 메뉴를 주문한다. 커피로써 이루어지는 하루의 오프닝과 클로징을 지키고 싶은 욕심이 있달까. 아무튼 그렇다.


그러나 요즘은 디카페인 커피로 인해 내 하루의 규칙적인 리듬이 위협을 받고 있다. 디카페인 시장, 디카페인 커피가 많이 발전했다. 디카페인 커피는 보통 맛과 향이 일반 원두로 내린 커피보다 살짝 떨어져서 별로 선호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이 마시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 디카페인 원두를 주문해 보았는데 이게 웬걸, 맛이 상당히 좋았다. 물론 향도 풍부했다. 지금도 밤에 커피를 한잔 더 마실까 하는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커피커피커피가 아니라 커피커피커피커피가 되는 날이 생겨버렸다. 커피커피커피커피. 입으로 따라 소리 내는 것만으로도 위에 부담이 가는 느낌이다. 실제로 카페인 때문이 아니라 배가 더부룩해서 오늘도 늦게 잠을 잘 것 같다.


분명 디카페인 커피를 마셨는데 예전과 다르게 왜 이렇게 맛이 좋을까 관심이 생겨 찾아보니 내가 마시는 디카페인 원두는 물 추출 방식은 동일하지만 SWP(스위스 워터 프로세싱)로 만든 원두가 아니라 MWP(마운틴 워터 프로세싱)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디카페인 원두를 만드는 물 추출 프로세스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생두를 물에 담가 추출된 추출액을 탄소 여과기를 통해 카페인만 제거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카페인만 제거되고 생두의 여러 성분들이 가득한 이 물에 새로운 생두를 넣는다. 이 과정에서 (생두의 여러 성분들이 이미 물에 가득하므로) 카페인만 새로운 생두에서 나오게 되어 디카페인 원두를 계속해서 얻을 수 있다.


MWP는 SWP와 흡사한 과정을 거쳐 카페인을 제거하지만 멕시코의 가장 높은 화산의 빙하수로 만들어진다는 점이 다르다고 한다. 내 추측이지만 카본 필터(탄소 여과기)도 좀 다르고 세부적인 과정에서도 차이가 나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물이 다르다는 점만으로 맛에 이렇게 차이가 날 수 있다고? 솔직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SWP로 만든 디카페인 원두로 내린 커피와 맛과 향에서 차이가 분명히 나는데 아무리 찾아도 정보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기술을 개발한 회사에서 보안 차원으로 정보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가 아닐까.


회사의 보안 문제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속이 더 이상해졌다. 무언가 새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보안이라면 어쩌면 커피에게 내 보안이 위협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커피가 하루의 끝을 단단하게 여며 주어야 하는데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며 이것저것 쓸데없는 말을 장황하게 쓰고 있다. 커피커피커피커피. 지금도 한잔 더 마실까 하는 생각이 위험하다.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큰 이야기가 된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한 사람의 인생이 된다, 는 상투적인 문장은 집어치우고 일단 끝을 내야 새로운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커피커피커피. 한 박자 쉬고 커피커피커피. 때로는 커피커피. 오늘은 이만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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