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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Mar 07. 2023

연필에 대한 잡다한 생각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데 작업할 때 특별히 아끼는 도구가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연필이라고 답한 기억이 난다. 보통 사람들이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며 시간이 지날수록 연필을 점점 안 쓰게 된다. 개인적으로 참 안타까운 일이다.


나의 경우 (직업적 노력의 측면도 있지만) 주머니 속에 연필을 항상 한 자루 넣고 다닌다. 언제 어디서든 드로잉이 가능하게끔 준비를 해 놓는 것이다. 아이디어 스케치라든가 무언가 빠르게 기록해 놓아야 할 때 유용하다. 그러나 작업을 주로 집에서 하는 편이라 사실 자주 쓰지는 않는다. 요즘은 아이패드가 워낙 좋아서 디지털 환경에서 그리는 일이 많다. 그래서 그냥 마음 다잡기 용으로 부적을 지니듯이 가지고 다닌다.


어찌 되었든 간에 연필은 참 멋진 도구다. 사각사각하는 청각적 만족감부터 부드러움과 거칢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미디엄 자체가 가진 폭넓은 질감으로 어떤 묘사에도 대응 가능하다. 목탄처럼 손에도 잘 묻지 않고 잉크처럼 사용 시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 무한정하지는 않지만 수정이 용이하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편한 도구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아니면 말고.


의외일 수 있지만 연필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다. 왜냐면 한창 드로잉 후에 더러워진 손으로 밥을 먹는다면 꺼림칙하지 않을 수 없다. 먹을 수 있는 연필. 연필에 진심인 유명 회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초록색 연필 파버카스텔 9000으로 유명한 파버카스텔 사도 그렇고 카렌다쉬 사도 그렇다. 아이들이 쓰는 것도 고려하여 위생적으로 만들었는지 실제로 먹어도 어느 정도까지는 안전하다고 한다. 연필을 손에 쥐고 다른 손에는 샌드위치를 집어 들며 먹을 때마다 감사하고 있다. 한쪽 손만으로 그림을 그려도 다른 쪽 손에 흑연가루가 묻기 마련이다. 그래도 카렌다쉬여서(흑연 종류는 평소에 카렌다쉬 사의 제품들만 쓴다.) 믿고 먹을 수 있다,라는 느낌이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연필입니다,라고 홍보하면 잘 팔리지 않을까? 식품이 아니지만 필기구처럼 자주 쓰는 도구들이라 위생이 중요한 제품들을 왜 이렇게 홍보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믿고 먹을 수 있는 연필입니다. 한번 시식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사양하겠습니다. 그런가요? 잘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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