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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da Apr 06. 2023

의자가 놓인 방

평소 쇼핑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물욕도 없는 편이고 사고 싶은 것들은 보통 오프라인에서 팔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 구매를 주로 이용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쇼핑과 멀어지게 되었다. 밖에 나갈 일이 있는 경우는 주로 산책이나 가벼운 커피 한잔과 함께 가벼운 업무를 보러 갈 때뿐. 그러나 밖에 나가는, 그것도 쇼핑하러 나가는 한 가지 예외의 경우가 있긴 한데 그것이 의자다.


사실 쇼핑하러 나간다기보다 앉아보러 나간다. 좀 괜찮다 싶은 의자들은 전부 고가여서 마음에 든다고 무작정 구매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많이 앉아 본다. 앉아 보고 이거다 싶은 의자가 나타나면 구매하려고 생각 중인데 좀처럼 결정을 못 하겠다. 일 중간중간에 잠깐 쉴 때 쓸만한, 온전한 편안함을 선사해 줄 단 하나의 의자를 찾고 있다.


조금 이상해 보일 수 있는데 내 경우 업무용 의자, 휴식용 의자, 공부용 의자를 따로 나누고 있다. 집에서 업무를 보는 프리랜서들 중 생활공간을 나눠서 각 공간의 기능을 다르게 쓰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파티션을 치거나 해서 이곳은 일하는 곳, 저곳은 쉬는 곳 이런 식으로. 나는 여기에 더해 의자까지 나누고 있다. 의식적으로 나눈 것은 아니고 살다 보니 나누어지게 되었다. 요즘은 아이패드를 이용해 공간의 제약 없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의자를 더 의식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앉는 의자가,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고 만지고 듣는 주변의 공간이 새로운 공간이 되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의자 자체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행동을 통제하는 느낌이다. 이쯤 되니 가끔 의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 녀석에게 맞는 공간을 찾아주어야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업무용 의자는 적당히 정돈된 사물들과 함께 있게 하고 공부용 의자는 잘 어울리는 책상과 함께 뭐 이런 식으로. 휴식용 의자가 제일 문제인데 집 구조 상 휴식을 취하는 용도로 쓰는 공간이 마땅히 없어 곤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의자와 나 빼고는 아무것도 없는 작은 방을 예전부터 늘 갖고 싶었다. 쉴 때 필요한 도구인 의자를 제외하고 아무런 물체도 없는 그런 이상적인 방. 자연스러움이 필요한 만큼만 있는 상태라면 자연스러운 휴식이 가능한 이상적인 방을 갖고 싶다. 좋은 의자에 몸을 맡기고 중력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몸에 힘을 뺀다. 가만히 있는다.


마음만큼은 아무것도 없는 방에 있는 것처럼, 이런 식으로 살짝은 무미건조하게, 좋게 말하면 잔잔하게 글을 쓰고 싶어서 써 보았다. 햇살 한 줄기 정도는 방에 더 들어와도 괜찮을 것 같다. 비가 오고 있어 기분이 심침하다. 지금 듣고 있는 그리고리 소콜로프의 연주는 너무도 훌륭한데 문제는 의자가 없다. 언젠가 생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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